이젠 너무나도 유명해진 3D 수작 애니메이션 ‘슈렉’이 2001년 54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때, 국내의 적잖은 매체들이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의 칸 입성”이라고 보도하곤 했었다. 명백한 오류였다. 그보다 무려 28년 전인 1973년에 이미 그 위업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내친 김에 심사위원 특별상까지 거머쥔 ‘기념비적’ 애니메이션이 있었으니까. 이번 주 선보인 ‘판타스틱 플래닛’(The Planete Sauvage, 야만적 행성)이 그것이다.프랑스 태생 체코계 SF 소설가 스테판 울의 원작 소설(‘Oms en Serie’)을 세계 3대 애니메이터 중 하나로 꼽힌다는 르네 랄루 감독이 25명의 스태프와 더불어 3년 반 동안의 세월을 받쳐 형상화했다는 페이퍼 애니메이션. 무려 30여 년 전의 작품이건만, 어지간한 실사 영화와는 달리 빛 바랬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종이 위에 그려서일까, 우선 오늘 날의 3D 애니메이션이나 예의 셀 애니메이션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회화의 질감이 물씬 풍긴다. 퍽 색다른 맛깔이다. 마치 완성도 높은 회화의 성찬에 초대 받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실사 영화 뺨치는 움직임을 자랑하곤 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야 비할 바 못되지만, 캐릭터나 배경의 동선도 충분히 자연스러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가장 인상적인 건 그러나 극히 문명비판적, 계급갈등적이면서도 애니메이션 특유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야심적 내러티브다. 드라그라 불리는 푸른 거인들이 옴(Om)_인간을 뜻하는 프랑스어 ‘옴므’(Homme)와 발음이 거의 흡사하다_이라는 작은 인간들을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처럼 지배하는 ‘야만적 행성’_이 원제가 정 반대의 함의를 띠는 제목으로 둔갑한 건 무척이나 안타깝다_이야기말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황폐해져만 가는 인류문명에 대한 우화요 구 소련의 체코 침공에 대한 신랄한 비유 등으로 해석되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같은 걸작 SF 실사 영화가 내내 떠오른 것도 그래서고.
간만에 워낙 센 애니메이션과 조우해서일 게다. 솔직히 사교댄스도 엄연한 예술이라고 주장_그에 동의하지 않는 건 결코 아니다. 대학시절 한 때 영화 못지않게 춤을 사랑하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수오 마사유키의 ‘셸 위 댄스?’ 같은 수준급 댄스 영화도 있지 않은가_하며 전국을 춤바람으로 돌리겠다는 ‘바람의 전설’(감독 박정우)이나, 서로를 그토록 그리워했으면서도 끝내 어긋나는, 일본에서 날아온 또 하나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 ‘연애사진’ (감독 츠츠미 유키히코) 등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 까닭은. 이성재와 김수로, 박솔미나 히로스에 료코, 마츠다 류헤이 등 일본 청춘 스타들의 면면에 강렬히 끌리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전찬일/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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