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3시 한국은행 본점 회의실에 12개 국내은행 대표들이 모였다. 금융결제원 회원사 총회. 금융결제원은 한은과 국책·시중은행들이 회원사로 참여한 사단법인으로, 이날 총회는 회원사 대표들이 신임 금융결제원장을 뽑는 자리였다.종전 금융결제원장은 사실상 한은 총재의 '지명직'이자, 한은 임원들의 '낙하산 착륙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결제원장 선임엔 다른 금융기관처럼 공모제가 적용됐다. 적잖은 금융계 인사들이 공모에 응했고, 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돼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후보 3명을 압축했다. 이날 총회에서 은행 대표들은 후보추천위가 상정한 3명중 우리나라 일선 금융결제시스템 운영을 책임질 최적임자 1명을 골라내야 했다.
그러나 총회는 30분도 못돼 끝났다. 한 참석자가 전해준 회의 내용은 이랬다.
총회 의장인 박 승 총재는 "3명중 1명은 사퇴했다. 이런저런…여차저차…한 이유로 이상헌 한은 부총재보를 신임 원장으로 선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 반응은 당연히 찬성. 중앙은행 총재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눈치없이' 토를 달 은행이 있을 리 만무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한 은행장이 박 총재에게 굳이 공모제의 필요성이 있는지 물어봤다. 이미 공모단계부터 금융계에선 '신임원장 내정설'이 파다했고, 옛 방식대로 하든 공모절차를 밟았든 실제 결과 역시 어차피 한은 총재 의중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박 총재도 "공모제로 하라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만 답했다는 전언이다.
인선결과에 대해선 '충분히 될 만한 사람이 됐다'는 것이 중평이다. 하지만 공모제란 말 자체를 무색케 한 인선과정 때문에, 선택은 적절했지만 의미는 퇴색해 버렸다. /이성철 경제부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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