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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이런 드라마 미처 못 봤어요"/"꽃보다 아름다워" 엔딩신 촬영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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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이런 드라마 미처 못 봤어요"/"꽃보다 아름다워" 엔딩신 촬영 현장

입력
2004.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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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참 예뻤다. 6일 오후 KBS2 '꽃보다 아름다워'(극본 노희경, 연출 김철규 기민수)의 마지막 장면 촬영이 한창인 경기 광주시의 한옥집. 너른 마당 한 켠에 색색깔의 팬지와 빨간 베고니아, 진홍색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치매에 걸린 엄마(고두심)를 위해 미옥(배종옥)―영민(박상면) 부부가 마련한 시골집의 정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어쭈, 그랬지, 좋아. 나랑 전쟁하자 이거지." 미수(한고은)의 손을 빌려 세수하는 엄마의 얼굴에 치약을 묻혀대던 재수(김흥수). 엄마가 반격에 나서자 혀를 쏙 내밀고 저만치 달아난다. 그 뒤를 쫓는 엄마. 그 모습을 미옥과 영민이 평상에 앉아 빨래를 개며 흐뭇하게 바라본다.

14일 29, 30회가 연속 방영되는 '꽃보다 아름다워'는 이 광경 위로 미옥의 내레이션이 흐르며 막을 내린다. "어쩌면 우리 자식들은 전처럼 우리에게 밥 해주는 엄말, 빨래 해주는 엄말 순간순간 그리워하고 아픈 엄마를 다시 귀찮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한가지, 어머니 당신이 있어서 정말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세 차례 리허설을 마치고 촬영을 시작할 무렵. 후두둑!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기어이 비를 뿌린다. 잠시 촬영을 접고 스태프들이 늦은 점심을 드는 사이, 연기자들과 인터뷰할 짬을 얻었다. 좁은 방안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빨강 하트가 촘촘히 박힌 촌스러운 담요 속으로 나란히 다리를 뻗고 강냉이를 나눠먹는 연기자들 모습이 정겨웠다.

"치매에서 빨리 벗어나야 할 텐데(웃음). 힘들 것 같아. 식구들과 워낙 정이 들어서." 고두심은 방송 초반 시청률이 5, 6%대에 머물렀을 때 초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오랜만에 좋은 드라마 하고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면서 "나중에 시청률 오르고 사람들이 '요즘 볼만한 드라마 이것밖에 없다'고 했을 때 기쁘기는 하더라"고 답했다.

"빨리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느리게 사는 어머니, 돈은 없지만 예쁘게 살아가는 가족, 정말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나도 (가족과) 대화가 없었는데 가족끼리는 피곤해도, 자고 있어도, 자꾸 건드리고 말 걸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연기자들의 호흡은 고두심의 말처럼 "아무리 맞춘들 이렇게 딱 맞을까 싶게" 훌륭했다. 말이 필요 없는 고두심과 배종옥, 고모 역의 박성미 등 중견 연기자들은 물론 아직 덜 익은 신인들도 제 몫을 거뜬히 해냈다.

그런 그들에게 선배들의 아낌없는 칭찬이 쏟아졌다. "고은이는 살 부비는 생활 연기가 딱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살가울 수 없다. 우리끼리 미옥이 역을 고은이 시켰으면 더 잘 했을 거라고 말했다."(박성미) "흥수를 차세대 주자로 강력 추천한다. 종옥씨와 '우리가 스무 살 때 저만큼 했을까' 얘기했다."(박상면)

종영을 앞둔 작가의 심정이 궁금했다. 노희경씨는 "엄마가 치매에 걸린 뒤로는 암으로 돌아가신 울 엄마 생각이 자꾸 나서 글쓰기가 힘겨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 시대에 가족은 짐일 뿐이라고들 한다. 60, 70%는 맞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손을 내밀지 않으면 후회하게 된다. 애인끼리는 주고 받아도 정작 가족에게는 하지 못했던 말,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꽃보다 아름다워'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올라있다. "이게 정말 연기일까. 진짜 가족이 아닐까. 드라마가 끝나도 이 땅 어디에선가 그렇게 오순도순 살아갈 것 같다." 평생을 두고 그리워 할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 찡하게 보여준 고두심, 뻔뻔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버지에 더 없이 어울렸던 주현에서 "신나게 노는 장면이 많아 재미있었다"는 꼬마 민이 역의 아역배우까지, 그들 모두 꽃보다 아름다웠다.

/광주=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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