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의 여성이 외래 진료실을 찾아왔다.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하더니 “한국일보에서 읽었다”고 하면서 필자가 쓴 원고를 내민다. 오려 가지고 온 원고는 필자가 한국일보에 게재한 비만에 관한 글이었다. 체형그림이 있는 원고였는데 그림 중 하나인 자루형을 가르키며 바로 자기가 이 형에 속한다는 것이다.의사의 눈으로 언뜻 보니 전혀 비만은 커녕 날씬하고 건강미가 넘치는 중년 부인이었다. 진찰을 해봐도, 모든 비만지표를 체크해도 극히 정상적인이었다. 더구나 운동도 열심히 해서 근육미와 건강미가 넘치고 옷도 세련되게 입었다. 당연히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보였다.
그래서 “아주 건강하고 정상이니 아무 염려 마시라”고 했더니 대뜸 “아랫배가 나온 게 싫어서 그러니 제발 이 똥배(?)를 정상화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또 아랫배가 내장비만이라고 의사처럼 진단까지 한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복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도“원하시면 해드리겠으나 할 이유가 없다”고 만류했더니 몹시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아랫배가 약간 나온 것에 신경을 쓰느냐”고 했더니 수영복을 입을 때 맵시가 안 난다는 것이다.
이 분의 예처럼 비만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우리사회에 허다하다. ‘살을 뺀다’고 하면 의학적 질병인 비만을 관리한다는 측면보다 요사이 흔히 말하는 ‘몸짱’을 추구하는 것과 동일시된다. 물론 비만을 관리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몸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왜 비만이 되는지, 그 의학적 이유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비만인 경우 각종 질병이 생기는데 특히 매우 많이 발생하는 질병은 당뇨병, 담낭질환, 고혈압, 인슐린저항성, 호흡곤란, 수면무호흡증후군이다. 중등도의 관련이 있는 질환은 심장의 관상동맥질환(협심증), 퇴행성 관절염, 요산 증가와 통풍이며 약간의 관련 있는 질환은 암(유방, 자궁내막, 대장), 생식 호르몬 이상, 다낭포난소증후군, 불임, 요통, 수술시 마취위험증가, 임신 시 태아이상 등이다.
의사들에게 있어서 비만을 치료하는 목적은 지금 예로든 질병의 발생을 줄이는 것이다. 비만과 관련된 대부분의 질환은 잘 치료되지 않고, 만성적이며 또 각종 합병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고질적인 질병의 원인인 비만은 그 치료가 말 그대로 오래가고 고질적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환자들은 말도 안되는 엉뚱한 비만관리 요법에 유혹당한다. 비만 치료의 이유를 좀더 확실히 알아야겠다. 살과의 전쟁! 해볼만한 질병이다.
/윤방부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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