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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황소와 대통령

입력
2004.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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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안이 가결(3월12일)된 뒤 한달 가까이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칩거가 이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정국 움직임에 대해 일절 언급을 피한 채 독서와 산책으로 소일하고 있다. 내각의 보고도 받지 않고 탄핵심판 변론과 관련한 법률대리인단과 소수의 지인을 제외하곤 외부와의 접촉도 끊은 것 같다. 탄핵안 가결 이후 국민이 접한 노 대통령의 모습은 영부인과의 산책장면과 청와대 내 식목행사가 전부다.이 사이 밖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대통령직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며 큰 흔들림 없이 국정을 이끌어가는 듯하다. 노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격식을 고려한 직무 수행이긴 해도 국민들은 '대통령이 없어도 나라는 잘 굴러가는구나!'라는 느낌을 갖는다.

정국의 변화는 가히 질풍노도라 할 만하다. 탄핵정국 초기의 수직상승세는 주춤했지만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도는 크게 올라갔다. 좌초 직전의 한나라당은 박근혜 의원을 새 선장으로 뽑아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고 새천년민주당은 어렵게 추미애 의원을 선대위원장으로 뽑아놓고도 내분에 싸여 있다. 민주노동당은 교섭단체를 기대할 만큼 선전하고 있는 반면 자민련은 교섭단체 탈락을 걱정하고 있다.

정당 지지도 변화와 함께 이념갈등 세대갈등 등 불길한 징조도 나타나고 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의 노인 폄하 발언은 실언이라고 하더라도 현존하는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직 총리들이 대 국민 호소문을 통해 대통령과 정치권의 모든 당사자들에게 겸허한 자세로 국가안정 도모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호소한 것은 탄핵사태와 이어진 총선정국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런 바깥 움직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통령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국정, 대통령이 입 다물고 나서지 않으니 나라가 조용하다는 시민들의 인식, 영부인의 학력문제가 오르내려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입장 등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족하다. 반면 탄핵반대 바람에 편승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 상승과 예고된 4.15 총선 승리는 분명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들려오는 얘기로는 탄핵안 가결 직후의 다소 격앙되고 난감했던 노 대통령의 표정은 상당히 진정되어 평상심을 되찾은 듯하다. 소설 '칼의 노래'를 다시 읽는 것을 보고 노 대통령이 거듭남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노 대통령의 청와대 칩거는 국정운영 복귀에 대비한 최적의 학습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1주일 후면 노 대통령의 위치는 달라진다. 헌재의 심판이 남아있지만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는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해줄 것이고 노 대통령은 힘과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헌재의 부결을 거쳐 대통령직무에 복귀할 경우 노 대통령에게 일어날 변화는 국민적 관심사다. 급변하는 환경에 대통령이 어떤 자세로 대응하느냐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대사안이기 때문이다. 총선 후에 몰아칠 변화가 더 극적일 것이란 게 국민들의 직감이다.

총선 후 열린우리당은 힘이 넘치는 황소가 될 가능성이 높고 노 대통령은 이 황소를 부려야 할 처지다. 고삐 풀린 황소에 그대로 올라탈지, 코뚜레를 꿰어 밭을 갈고 짐을 나르게 할지는 노 대통령의 몫이다. 노자는 지도자를 네 종류로 분류,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지도자, 그 다음은 백성들이 그를 가까이 여겨 칭송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나쁜 지도자는 백성들이 경멸하는 지도자'라고 했다. 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어떤 지도자로 평가되는가는 전적으로 총선 후에 보일 그의 지도력에 달렸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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