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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77>시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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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77>시오랑

입력
2004.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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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산문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에밀 시오랑이 1911년 4월8일 루마니아의 라시나리에서 태어났다. 1995년 파리에서 몰(沒). 미국의 문학평론가 윌리엄 개스의 표현을 빌리면 시오랑의 글들은 "소외, 부조리, 권태, 무용함, 퇴폐, 역사의 포악성, 변화의 속됨, 고통으로서의 깨달음, 질병으로서의 이성 같은 현대적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로맨스"다.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불변의 사태가 시오랑에게는 모든 골칫거리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한 책 제목대로 '절망의 꼭대기'에서 살았다.시오랑의 절망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가지 않은 것은 얄궂게도 '자살의 가능성'이라는 '보험' 덕분이었다. 언제라도 자살할 수 있다는 최후의 희망을 원기소로 삼아 그는 84년의 긴 생애를 꿋꿋이 살아냈다. 부카레스트와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베르그송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는 구실로 26세에 파리로 간 그는 결국 논문을 쓰지 못했고(어쩌면 쓰지 않았고), 프랑스에서의 그 이후 생애를 그 자신의 표현대로 '기생충'으로 살았다. 그의 글들은 정통적 철학 논문이 아니라 철학적 잠언이나 에세이였으므로, 그는 철학자 대접을 받지 못했다. 마흔이 넘도록 그의 직업은 대학원생이었고, 번역가나 출판사의 객원 편집자가 또 다른 직업으로 추가되었다.

33세 되던 해 어느 날, 시오랑은 노르망디 디에프의 한 여관에서 말라르메의 시를 루마니아어로 번역하다가 '아무도 읽어줄 사람 없는' 자신의 모국어에 절망해 그 뒤로 프랑스어로만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시오랑의 이 결심은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에 대한 축복이었다. 그의 서너 줄짜리 잠언들은 섬뜩한 정확성과 터질 듯한 밀도로 여느 저자의 서너 권짜리 저서 못지않은 통찰을 내뿜으며 프랑스어의 섬세함을 도드라진 정점으로 밀어붙였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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