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 영감과 내수사(內需司). 드라마 '대장금'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던 환관과 궁내 조직이다. 사극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내시(內侍)는 흔히 환관(宦官)과 똑같이 생각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개념이 조금 다르다. 왕의 측근으로 왕과 밀접한 궁내의 일을 관리하는 신하 일반이 내시, 성기능을 잃은 남자로 관직을 맡은 사람이 환관이다. 고려시대의 경우 내시와 환관은 엄격하게 구분되었으나 조선 성종 이후 같은 개념으로 사용됐다. 환관은 고려 말 이후 왕을 소재로 한 역사 드라마에서 언제나 조연이었지 단독으로 주목받은 적이 거의 없다. 국내 사학계의 연구도 마찬가지다. 박한남 국사편찬위 편사연구관이 1980년대 초반에 낸 '고려 내시에 관한 연구' 등 논문 몇 편이 고작이다. 한국과 함께 이 제도가 특별히 발달한 중국과 비교하면 연구 성과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시사·생활사 연구의 폭이 넓어지면서 환관 연구가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장희흥(38) 동국대 강사는 올해 2월 '조선시대 환관 연구'로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환관을 주제로 한 국내 첫 박사 논문이다. 장씨는 10일 오후 2시 중앙대에서 열리는 한국역사민속학회 연구발표회에서 '조선시대 환관 연구―궁중생활을 중심으로'를 발표한다. 박한남 연구관도 고려, 조선시대 환관을 재조명하는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최근 연구에서 드러나는 우리 역사 속의 환관은 어떤 모습일까?
환관은 모두 천민 출신인가
환관은 선천적이거나 특수한 사정으로 거세된 아이들을 내시가 입양해 양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 전기에는 중국에서 환자(거세된 사람)를 바치라는 요구가 있어 전국에 걸쳐 모집한 적도 있다. '경국대전'에는 환관이 환자를 양자로 삼는 경우 대개 3세 이전에 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명종대에 가면 한 환관이 보통 4, 5명의 어린 환자들을 양자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흔히 환관은 천민 출신인 것으로 알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고려사'에는 환자의 출신을 '백성이 아니면 천한 종'이라 했고, 조선 초기 기록에도 관노나 석장(石匠)의 자식이 환관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족보인 '양세계보(養世系譜)'에는 '영남의 사족(士族·선비 집안)으로 선천적인 고자가 있는데 내시가 데려다 양자로 삼자 절대로 통래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양인(良人) 출신 환자가 내시가 됐다는 자료도 여러 군데 나온다.
궁궐 재정 관리부터 왕명 출납까지
궁궐 내 환관직인 내시부의 인원은 고려 말 공민왕대 121명이던 것이 조선 성종대에는 140명으로, 연산군대에 가면 161명으로 늘어난다. 문서에 나타나는 정규 인원이다. 하지만 '순조실록' 등에 '환관이 335명, 궁녀 684명'이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면 실제 근무자 수는 최대 400명 정도로 추정된다. 1910년 내시부가 없어질 때까지 이 규모는 유지됐다.
대우는 다른 관리들과 큰 차이가 없으나 형벌의 경우 중죄가 아니면 대부분 내시부에서 자체 처리했다. 관직 품계로는 종2품(상선)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실제로 1품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임무는 임금의 수라상을 검사하는 감선(監膳),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는 전명(傳命), 수문(守門), 소제가 기본이었다. 고려 전기까지는 궐내의 급사나 소제가 위주였고 원 간섭기부터 왕명 출납이나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고려 말 내시부가 창설되고, 조선 초기 왕실 내의 임무로 정례화하면서 환관 조직도 체계를 갖추었다. 왕의 명령에 따라 경차관(敬差官·민정 조사관)으로 나가거나 공녀를 선발하고, 원자(元子·세자 책봉되지 않은 임금의 맏아들)를 자신의 집에서 키우거나 주위에서 보양하는 일도 했다. 또 매를 관리하고 제사나 기신제·의례 등을 집제했다.
그 중에서 감선, 왕실의 재정 관리 임무는 환관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 특히 문종대에는 외척의 등장과 문정대비의 수렴청정으로 내수사를 관리하는 환관들의 힘이 강력했다. 장희흥씨는 "위상이 단순했다는 예단이나, 모사를 일삼는 나쁜 이미지만 주로 부각된 것과는 달리 환관은 왕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독특한 정치적 위상을 가진 존재"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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