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의 관심이 총선에 집중된 가운데 북핵 문제는 여전히 불안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기대와 우려 속에 열린 2차 6자 회담 이후에도 북핵 문제는 여전히 '문제'로 진행 중이다.특히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미 모두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채 시간벌기와 시간끌기로 소일하면서 '그럭저럭 버티기'에 나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각국이 합의했다는 것은 분명 다행한 일이지만 아직도 북미 간 줄다리기는 지루한 기 싸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해결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북한은 폐기를 전제로 핵 동결 의사를 밝히고 있고 미국도 대북 다자 안전보장 용의를 표명한 바 있다. 따라서 적절한 보상이 따른다면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시작할 수 있고 미국 역시 북한의 의미 있는 핵 동결이라면 대북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정도까지는 의견 접근이 이루어진 상태다.
다만 문제 해결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동결 대 보상'의 출발점을 놓고 아직은 이견이 존재하는 바, 구체적으로는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 문제와 평화적 핵 활동 문제가 걸림돌로 남아 있다. 즉 북한은 HEU 프로그램을 전면 부인하고 영변의 원자로를 포함, 평화적 핵 활동은 지속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HEU 프로그램을 고해성사 후 자진 폐기하고 영변의 원자로 가동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제는 북미가 마음만 먹는다면 걸린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국면에서 문제 해결이 더 절실한 쪽은 아무래도 북한인 듯하다. 이미 양자대화 주장을 하다가 다자대화를 수용했고 불가침 조약을 고집하다가 결국은 다자 서면 보장을 받아들였던 북한이고 보면 이번 쟁점에서도 합리적인 명분과 체면만 유지된다면 좀더 전향적인 양보조치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선택과 결단이 남아 있다.
지난 시기 북미관계를 회고해 보면 북한은 매번 결정적인 국면에서 기회를 놓치고 시간을 허비했던 경험이 있다. 2000년 10월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 교환이 있은 직후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거의 성사된 마당에 결국 북한은 사소한 문제해결을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그 뒤 부시 행정부가 등장한 후로 북한이 미국과 다시 힘겨운 싸움을 했어야 함은 김정일 위원장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또 다시 2004년에 김정일 위원장의 선택이 남아 있다. 우여곡절 끝에 큰 틀의 해결 방향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지금 남아 있는 쟁점에 대해 김 위원장이 좀더 과감한 선양보를 취한다면 오히려 미국은 적어도 6자 회담에서 무리하게 고집을 피울 수 없게 될 것이다. HEU 프로그램을 인정하는 것이 2002년 10월 사태의 책임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부담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경수로 건설을 영 못마땅해 하는 마당에 섣불리 평화적 핵 활동마저 포기한다면 정작 북한이 원하는 대북 에너지 지원의 정당성이 상실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찾기만 한다면 북한이 명분을 살리면서 양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명심할 것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잃어버린 10년',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 이후 '잃어버린 4년'의 아픔을 생각할 때 김 위원장의 선택이 더 이상 '시간 잃기'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먼저 양보하는 것이 결코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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