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죽기 직전 목사를 불렀다. 아직도 갈 곳을 정하지 못해서였다. 그래도 계속 망설이자 목사는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 "천국은 날씨가 좋고 지옥은 사교에 좋지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연설 가운데 한 대목인데 선거를 앞둔 유권자의 심정이 꼭 그와 같다.선거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심판해야 하는지 확실치가 않다. 국회의원인지 대통령인지, 아니면 탄핵인지, 그들이 속한 정당인지, 개혁인지 안정인지 생각할수록 혼란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혼란스럽지 않다면 그야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선거에서 제대로 된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케네스 갈브레이드의 말처럼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기보다는 끔찍한 것과 역겨운 것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이상한 선택일 수 있다.
금년 사월은 여느 사월과 달리 유난히 역사적인 것 같다. 고속철도가 개통되고 또 내가 사는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전철이 개통된다. 이렇게 막힌 것들이 지상이나 지하에서 모두 뚫리고 있는데 과연 정치의 답답함은 언제 뚫리려는지?
인간처럼 우스운 것도 없다.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자 국회를 가진 동물이다." 17세기 영국의 풍자시인 사뮤엘 버틀러의 말이다. 인간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선택한 권력자를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제퍼슨이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이다.
그러나 감시자를 감시할 감시자는 누구인가? 촛불시위대가 정치인을 감시한다면 과연 이들을 감시할 자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로마의 풍자시인 주버날은 감시하는 사람 역시 감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의 평균 출산율은 감소했지만 감시자의 수는 증가했다. 반면에 감시자에 대한 감시자는 감소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어쩌면 감시자에 대한 심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단이 옳다 해서 반드시 처방도 옳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자신의 감시자가 되는 것만 못할 것이다. 표에 담을 수 없는 마음은 한 조각 구름이 되어 떠돌고 있다.
/최 병 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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