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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자유로운 영혼의 고독한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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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자유로운 영혼의 고독한 뒷모습

입력
200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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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리운 사람을 만났다. 뉴욕에서부터 교류하던 '행복의 나라'와 '바람과 나'의 주인공인 가수 한대수였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우리는 뉴욕에서의 추억을 포함,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지난 87년 겨울 뉴욕의 어느 한국 식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엄청나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맨발에 여름 샌들 차림을 한 기인이었다. 당시 이혼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던 그와 열 다섯 살 이상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금방 친구가 됐다. 나는 아티스트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자칭 염세적 낙천주의자인 그는 70년대 척박한 한국 대중음악계에 포크의 씨앗을 뿌린 선각자였다. 한대수가 해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바람과 나' '행복의 나라'가 김민기 양희은에 의해 히트했으나, 정작 그의 앨범 '멀고 먼 길'과 '고무신'은 유신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판금조치를 당했다. 대한민국으로부터 아티스트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또 다른 자유를 찾아 미국 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려 15년이 흐른 뒤 귀국, 세 번째 앨범 '무한대'(1989)를 내놓았으나 무정한 세월은 그의 소중한 전성기를 무자비하게 삼켜버렸다.

한대수는 요즘 다시 새 앨범을 준비중이다. 그리고 그는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무한한 자유에 대한 갈망은 역시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을 동반하나 보다. 나는 그것이 두려워 일찌감치 결혼을 선택, 지금은 자식 둘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다시 홀로 된 한대수는 그날 밤 여전히 자유롭고, 동시에 외로워 보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무한한 슬픔이 밀려옴을 느꼈다. 그리고 인간 한대수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신에게 빌었다. 귀가길 차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너무 매정해 보였다.

이무영/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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