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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강릉 회산동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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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강릉 회산동 당산

입력
200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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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을 넘어 굽이굽이 내려가면 큰 내를 만나는데 바로 강릉 남대천이다. 저 멀리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의 남성적 기상과 곤신봉, 선자령, 대관령, 능경봉, 석두봉, 삽당령, 두리봉의 품을 이어내는 남대천의 여성적 풍요로움이 어우러져 삶의 터를 빚어낸 곳, 이곳이 바로 남대천 유역이다.먼 옛날 강릉 사람들이 큰 뜻을 품고 한양으로 가는 길에 되돌아보면 애달픈 고향의 정을 반짝반짝 흔들어 보이듯이 흘러갔을 남대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든가? 강함과 부드러움이 만나 서로 깎고 다지며 오랜 세월 쌓아둔 곳, 그 중심에 회산동이 자리잡고 있다.

회산동은 500여년 전 심(沈)씨 일족의 정착과 함께 전형적인 동족 촌락으로 발전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거대한 소나무로 이루어진 당산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산으로 꼽혔다. 가운데 있는 신목(神木)은 둘레 250㎝ 내외의 세 줄기가 25m 높이로 자라 무척 웅장한데다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줄기가 솟아 있어 저절로 경외감이 들게 했다. 주위에는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듯한 자태의 소나무가 시간을 초월한 듯 신목을 호위하고, 그 너머 땅을 닮은 활엽수들이 주변을 마무리해 안정감 있는 숲을 이뤘다. 이 숲은 높은 기상과 부드러운 곡선, 그리고 신비한 형상이 어울려서 수반(水盤)에 꽃꽂이를 한 것처럼 안정감을 자아냈다.

그러나 2002년 태풍 루사 때 세 줄기 중 한 줄기가 부러져 나가면서 당당하던 신목이 갑자기 균형을 잃고 철선에 의지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온 지역에 불어닥친 개발 바람이 대관령의 정기와 남대천의 여유를 헝클어대면서 그토록 아름답고 포근해 보이던 이 숲은 격랑의 물결 위에 외로이 떠있는 섬이 되었다.

이처럼 자연과 사람이 당산을 망가뜨렸지만 아직 옛 모습의 뼈대는 남아 있다. 장래 희망도 없지 않다. 미래의 희망은 자연과 사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곳은 하천 범람원이어서 비옥한 사양토가 대부분이다. 소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땅이다. 사람도 믿을 만하다는 것은 당산 앞에 서 보면 안다. 우선 마을 사람들은 남대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강변의 긴 소나무 숲을 오랫동안 보존해 왔다. 멀리 보이는 마을 곳곳에 숲의 띠가 둘러져 있고, 집집마다 나무가 들어서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숲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회산의 빼어난 경치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당산 입구의 비석에는'회산이란 이름은 산과 물이 만나는 곳,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온 산자락이 깨끗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곳을 의미한다'라고 쓰여있다. 회산 팔경이라는 비석을 보면 영조 때 심씨 선조가 회산 팔경을 지었는데, 이 분은 "푸르름의 발 사면에 드리운 회산, 그 안의 사람들 한 점 수심 없다네" 라고 시작하는 회산가 십칠수도 짓고 산색 곱고 물빛 맑은 주위 경관의 아름다움과 따스한 삶의 정취를 노래하였다고 전한다.

선조와 후손이 하나 같이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을은 아름다운 숲을 지켜갈 수 있으리라. 마을 숲이란 자연에 사람의 문화가 새겨진 경관일진데, 자연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역사도 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 바람 부는 벌판, 회산동 비석에 기대어 서서, 미래의 마을 숲을 기대해 본다.

신준환/국립산림과학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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