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선배 김성주 형을 찾습니다.제가 성주 형을 처음 만난 것은 1966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신입생이었고 형은 자신감 넘치고 자상한 성격을 가진 선배였지요. 평소에도 형의 활달한 모습에 호감을 가졌는데 5월 축제 때 형이 모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와 멋진 연설을 하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형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다니면서 우정을 나누었지요.
저는 형에게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었고, 형은 어떤 질문에도 나름의 명쾌한 답변을 해주었지요. 저에게 할 말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대화는 무한정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어스름해지면 우리는 허름한 술집을 찾았지요. 얼큰해질수록 젊음의 열기는 솟구쳤고 어떤 때는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광주 무등산에 올라 세상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형과 저의 인연은 이어졌습니다. 비록 근무지는 달랐지만 형과 저는 똑같이 교사의 길을 걷게 됐지요. 우린 방학이면 나란히 농촌 활동이나 야학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 때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한가지를 공유했지요. 세상을 바꿔보자던 순수한 열정이 그것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문득 젊은 날의 터질 듯한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85년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소식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무슨 바람이 들어 낯설고 물설은 미국에 오기로 결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어 교사를 하다 보니 미국 물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미국에 도착해 몇 년간은 타향살이가 서러워 밤마다 눈물을 흘렸답니다. 이제 자리를 잡게 되니 그 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는군요. 나이가 들고 보니 모든 과거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성주 형,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조용한 강가에 앉아 취미인 낚시를 하고 계시는지요. 얼마 전 저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광주일고에 연락해 형 소식을 문의해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더 세월이 흐르기 전에 형을 만나 소주를 기울이며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성주 형, 이 글을 보게 되면 꼭 연락주세요. /송진동·460 Highland Ave. Palisades Park NJ 07650 USA·jindsong19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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