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사람은 누굴까? 교과서적인 답은 미국 해군 장교 로버트 에드윈 피어리(1856∼1920)다. 그는 1909년 4월6일 그린란드 북부에서 개 썰매로 북극점에 도달했다. 이 위업으로 피어리는 온갖 영예를 누렸다. 이미 세 해 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허버드 메달(탐험 분야의 업적에 수여되는 미국 최고의 메달)을 받은 그는 북극점 도달 이후 전세계 지리학회로부터 20여 개의 메달을 받았고 소장으로 승진했다.그러나 1891년 피어리와 함께 그린란드를 탐험했던 미국인 프레드릭 쿡(1865∼1940)이 여기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1906년 알래스카의 매킨리산 등정으로 이름을 얻은 사람이다. 피어리의 북극점 도달 소식이 알려지자 쿡은 자신이 그보다 한 해 전인 1908년 4월21일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논란 끝에 과학적 조사가 이뤄졌고, 지리학계는 피어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쿡의 1906년 매킨리 등정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피어리가 누린 영예가 온전히 정당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1909년 4월6일 정북극점 언저리를 거닐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위도 계산이 가능했던 최북단 지점은 캠프 제섭으로 알려지게 될 북위 89도47분(정북극점 5km 지점)이었고, 여기 처음 도착한 사람은 탐험대장 피어리가 아니라 흑인 대원 매슈 헨슨(1866∼1955)이었다. 그는 피어리보다 45분 먼저 이 지점에 도착했다. 피어리는 이 사실을 안 뒤 헨슨을 차갑게 대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이뤄진 헨슨의 이 위업은 세기 말에야 공인되었다. 1988년 헨슨의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 피어리의 묘 옆으로 이장됐고, 1996년에는 미국의 해양탐사선에 헨슨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으며, 2000년 미국지리학회는 헨슨에게 허버드 메달을 추증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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