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역풍 되살리기?여당의 압도적 우세로 흘러가던 총선 판세에 최근 변화조짐이 감지되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5일 '탄핵안 철회를 위한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표회담'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 의장은 이날 부산 민주공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6대 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탄핵안을 철회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회담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양당 대표회담이 필요한 이유로 탄핵심판 후 국론분열 가능성을 들었다. "헌재에서 탄핵이 결정되든, 기각되든 이에 대한 반발과 상처와 앙금, 국가적 에너지의 낭비를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나아가 "탄핵이 결정되면 헌재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 다수의 국민이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헌재로선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언급이다.
정 의장은 이어 "대표회담에서 탄핵안을 철회키로 하면 대통령에게 조치를 건의할 것"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달 11일 회견에서 밝힌 '선 탄핵안 철회, 후 사과' 입장을 상기시켰다. 즉, 대표회담에 이은 '노―박 회담' 또는 '노―박―정 회담'을 주선해 탄핵철회와 대통령 사과를 일괄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의장의 제안은 한나라당에 의해 즉각 거부됐다. 박 대표는 이날 "탄핵문제를 정치논리로 풀려고 한다면 스스로 법치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못박았다. 박 대표는 "대통령이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자세 때문에 이번 사태가 생긴 것인데 국회가 이를 또 흔들어서는 안 된다"며 "여당이 사회안정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의 이 같은 반응은 평소 그의 태도에서 충분히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정 의장의 노림수는 대표회담 자체 보다는 대표회담을 띄워 위력이 예전 같지 않은 탄핵 심판론에 다시 불을 지피는 데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최근 정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으로 야당 지지세가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자 탄핵문제를 다시 이슈화해 실지(失地)를 회복하려 한다는 얘기다.
야당에서도 "노풍(老風)에 따른 위기국면 탈출을 위한 것"(한나라당 윤여준 선대본부장), "고려장 발언에 대한 반발 무마책"(민주당 박준형 선대본부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은 "17대 총선은 새 출발의 계기가 돼야 하므로 정 의장의 솔로몬식 해법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양당의 논의가 진지하게 진행되면 대통령의 사과 문제도 새로 검토할 수 있다"고 정 의장을 적극 뒷받침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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