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든다면 투명하게" 대형 부패 자취 감춰정치개혁은 전후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쟁점이자 숙제였다. 이러한 흐름은 1994년 1월 정치개혁 4개 법안이 일본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글에서는 올해로 성립된 지 10년이 되는 정치개혁 4개 법안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에 대해 간략히 검토한다.
정치개혁 4개 법안이 제출됐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정치부패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해진 때문이다. 그러나 동 법안들이 제시되는 과정에서는 정치부패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정치자금에 대한 규제 이외에도 선거를 정당중심적이며 정책중심적인 것으로 전환해야 하고, 좀더 정권교체가 가능한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이 추가됐다. 이는 4개 법안에 정치자금규정법개정안 및 정당조성법안 외에도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개정안과 중의원 선거구획정심의회 설치법안이 포함된 것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치개혁 4개 법의 성과는 정치자금의 감소,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정당중심의 선거, 그리고 양당제 형성의 가능성 정도 등의 네가지 관점에서 평가해 볼 수 있다. 정치자금이 과연 감소했는지의 여부는 또한 두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이전과 얼마만큼 달라졌는가 하는 상대적 측면으로, 이 경우 93년 이전과 비교할 때 다소 감소된 측면이 나타난다. 1988년의 경우 정치자금의 총액이 약 3,000억엔에 이르고, 초선의원도 연간 약 1억2,000엔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새로운 제도 하에서 처음 선거를 실시했던 1996년의 경우 소선거구에 입후보했던 중의원의원에게 제공된 정치자금 총액은 약 395억엔으로, 1인당 평균 약 1억엔 정도(비례대표로 중복 입후보한 의원들 포함)로 나타났다. 전자의 경우 정당과 정치단체에의 수입을 합한 수치여서 중복 계산으로 인한 과대평가의 여지가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중의원 의원 중에서도 소선거구에 입후보했던 의원들만을 대상으로 했기때문에 과소평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후자의 경우 중의원의원의 평균 수입이 이전의 초선의원 보다 낮게 나왔다는 것은 정치자금의 양을 규제하고자 했던 의도가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두었음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식사제공 금지나 연좌제의 도입 등을 포함한 선거법의 개정에 따라 정치자금이 예전보다는 감소했다는 대체적인 평가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애초 요구됐던 '돈이 들지 않는 선거'라는 두 번째의 좀더 절대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여전히 그 규모가 크다는 지적인데, 따라서 새로운 제도의 효용성을 정치자금 규모의 규제 보다는 정치자금의 수지를 보다 투명하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하지만 정치자금과 연관해서 볼 때 보다 중요하고 확연한 것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 이후 예전과 같은 대형 정치부패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고, 선거에 있어서도 정치자금이 커다란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실시된 제43회 총선거 전에 몇몇 의원들의 금전 스캔들이 있었음에도 선거에서는 주요한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는 이들 스캔들이 예전과 같은 대형 정치부패 사건이 아니었기에 개인적인 잘못으로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제도에의 신뢰와 그에 대한 정부, 즉 검찰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다.
정당중심의 선거가 진행됐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정당명으로 투표하는 비례대표제나 한 명의 정당후보자를 낼 수 밖에 없는 소선거구제의 도입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정당중심의 선거를 가능하게 했다. 가장 상징적인 현상은 선거에서 정당대표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고 커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의 제43회 총선거는 고이즈미 자민당 총재와 간 민주당 대표 사이의 대결로 부각됐다. 이는 정당중심의 선거가 되면서 정당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대중적 인기의 인물을 선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선거에서는 고이즈미 총재의 높은 인기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당이 '메니페스트'(정책선언) 제시라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양당간의 정책대결적 양상이 유도됐다.
양당제의 출현 가능성 역시 선명히 나타나고 있다. 새 제도의 도입 이후 그 동안 세 번의 선거가 있었는데 그 결과는 대체로 자민당과 민주당 등 양당 대결구도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전후 야당이 획득했던 의석수중에서 최다인 177석을 차지함으로써 양당제와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넓혔다.
9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일어난 정치개혁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에 돈이 들어간다는 점을 인정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되도록 그 규모에 제한을 가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 투명성을 높이고 양당제 형성이나 정권교체와 같은 그 이외의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일본정치이기는 하지만 실효성에 초점을 맞추어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50년 자민당 독주 "흔들"/민주당 총선서 177석 획득 자민 누르고 정권교체 야심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요 정당은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 사민당 공산당 등이다. 이중 지난해 총선에서 정권교체가 가능한 양당제의 가능성을 제시한 민주당이 1955년 창당이후 거의 줄곧 집권당의 길을 걸어 온 자민당과 더불어 일본 정당정치의 주역으로 급부상해 있는 상황이다.
지난 총선에서 총 480석 중 237석을 얻은 자민당은 34석을 기록한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다. 범 자민당계 정당이었던 보수신당(4석)은 총선 후 자민당에 흡수됐다. 자민당은 당내 중심 파벌의 분열과 분당으로 1993년 7월 38년 간 독점했던 정권을 빼앗긴 적이 있다. 이른바 '55년 체제의 붕괴'이다. 절치부심한 자민당은 94년 6월 사회당과 신당사키가케와 손을 잡고 11개월 만에 정권 되찾기에 성공했지만 예전의 자민당이 아니다. 최근 독특한 리더십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추락하는 자민당을 지탱해주는 구세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 총선 직전 오자와 이치로씨의 자유당과 합당한 민주당은 선거에서 177석을 획득함으로써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간 나오토 당수가 이끄는 민주당은 이른 시일 내에 정권교체를 이룩함으로써 미국과 같은 양당제 정치를 구축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에서 분당한 신당 사키가케와 신생당을 큰 뿌리로 하는 민주당은 '자민당과 초록이 동색'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64년 종교단체인 창가학회를 모태로 태어난 공명당은 지난 선거에서 선전,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다. 창당 이후 중도의 길을 걸어왔던 공명당은 자민당과의 연립정권 내에서 발언력도 강해지게 됐다.
그러나 '55년 체제'의 주역이었던 사회당과 전통의 공산당은 최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사회당은 18석에서 6석으로, 공산당은 20석에서 9석으로 의석이 줄어드는 등 호된 심판을 받았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