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가끔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랫집 친구에게 놀러 갔는데 마침 그 집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식사 끝나기를 기다리며 한 구석에서 책을 읽곤 했다. 그러나 그 집에 읽을 만한 책이라곤 성경밖에 없었다. 식사는 길어야 마태복음을 다 읽어갈 즈음에는 끝나곤 했다. 마태복음은 예닐곱 번쯤 읽었던 것 같고, 그것이 지루할 땐 뒤쪽을 대충 보았다. 덕분에 성경과 예수의 생애를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의 산상수훈 구절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때 읽어서인지 어른이 된 후 집에 성경은 있어도 잘 읽게 되지 않았다.■ 11일의 부활절을 앞두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그리스도의 수난)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이미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격론과 화제를 불러일으켜 왔다.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유대인인가 로마인인가, 영화가 반(反)유대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관객이 심장마비로 숨질 정도로 잔인한 고문 장면이 허용될 수 있는가 등의 격론소식이 영화보다 먼저 상륙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신부와 수녀, 신자 800여명과 함께 시사회에 참석하던 지난달 24일, 요행히 추기경 가까이 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 산속의 불안한 여명(黎明)을 배경으로 시작된 영화는 긴장과 안타까움을 한 단계, 한 단계 고조시키고 있었다. '의인(義人)'에 대한 유대인 군중의 잔인한 보복과 로마 병사의 짐승 같은 폭력이 도를 높여가는 동안, 어느덧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옆 자리 사람도, 그 옆도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충격적인 영화였다. 인간 내면에 숨겨진 비열한 본성과 아들의 처절한 고통을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한없는 모성애가 같은 화면 안에 있었다. 저렇게 파괴적인 광기, 저렇게 순수한 슬픔이 모두 인간의 본성이라니…. 아름다운 감동이라기보다, 아프고 깊은 인상이 새겨지는 감동이었다.
■ 김 추기경도 눈물을 흘렸는지가 문득 애들처럼 궁금하기도 했으나, 확인할 수는 없었다. 추기경은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영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감동을 전했다. 기독교를 신앙하지 않는 이에게도 예수는 거룩한 스승이다. 예수의 고통을 통해 스스로 깊어지는 기독교 역시 위대해 보인다. 영화는 어린시절 읽은 마태복음 장면을 하나하나 처절한 극사실적 고통으로 재현시켜 주었다. 안식보다 번민이 커서 깊은 잠을 못 이루는 요즘, 예술과 종교의 의미를 새롭게 해 준 드문 영화였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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