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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상상깨는 현실속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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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상상깨는 현실속 교복

입력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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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술사와 한 여자의 대화. "무엇이 보입니까" "옆에 남자가 누워 있어요. 남편은 아니에요. 아, 후끈. 더워요. 어, 남자가 옆으로 돌아 눕네요. 일어나서 나가는 것 같아요." "아, 남자는 당신과 헤어졌고, 당신이 그래서 상처를 입은 거군요." "네? 남자의 티셔츠에 뭐라고 써 있어요. 뜨끈뜨끈 원적외선 불가마 체험실?" "크억!"요즘 대한민국 남녀가 가장 즐겨 입는 단체복 중 하나가 찜찔방의 찜질복이다. 교복, 군복, 경찰복, 간호사복 등 각종 '복(服)'은 절차를 거쳐 자격을 가진 자만이 입을 수 있으나, 찜질복 만은 입장료를 낸 모든 이용객에게 평등하게 지급된다. 그래서 이 옷만 입으면 낯선 남자나 여자 옆에 누워 잠을 청하는 장면이 건강과 웰빙이라는 새로운 의미소로 가득한 독특한 풍경이 된다.

모르는 남녀가 누워 있어도 다른 상상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는 것이 찜질복이라면, 단정한 차림을 카메라가 잡는 것만으로도 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영화 속 교복이다. 최근 충무로의 유행 중 하나는 꽉 끼는 교복을 입은, 육체적으로 매우 성숙한 여학생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어린 신부'는 대학생과 결혼한 여고생 이야기. 잠자리는 어떻게 할까. "절대 안 된다"는 부모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영리하게 피해간다. 다 큰 애들이 한 방에 살면서 그걸 피한다고? 영화는 바로 이런 아슬아슬한 장면만을 보여주며 관객을 살살 간지럽히다. 어쩌다 한 침대에 눕게 된 어린 부부, 신랑이 소녀의 얼굴을 보며 상상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의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영화는 소녀에 대한 성적 상상보다, 그런 상상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남편이 될 대학생에게 소녀의 친구는 "당신 원조야"라고 대놓고 물은 후, "친구 사이에 왜 말하지 않았느냐"며 엉엉 운다. 이제 영화 속 여고생들은 자신들이 언제라도 '사마리아'의 주인공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늘 성적 상상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영화 속 소녀들은 그래서 불쌍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실 세계는 다르니까. 거리에서 마주치는 교복 소녀들을 보라. 소녀의 육체에 대한 상상을 불허하는 기계적인 체크 무늬와 썰렁한 색감. 그리고 몸이 불어날 것에 대비해 헐렁하게 맞춘 치마는 빙빙 돌아간다. 아니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 생긴 하체 비만으로 터질 듯하거나. 대한민국의 교복 제작자, 육체의 일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그들이 있어 안심이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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