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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113억원 對 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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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113억원 對 0원

입력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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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한국정치를 진보정치의 불모지라고 부른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예를 들어, 1956년 대통령선거의 경우 한국전쟁의 포화가 멈춘 뒤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보후보였던 조봉암씨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항해 무려 30%를 득표했다. 또 4·19혁명 후 찾아온 민주적 공간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진보정당들은 분열에도 불구하고 7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바 있다. 그러나 5·16쿠데타와 함께 혁신정당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한국정치는 진보정당의 불모지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로부터 4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성공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진보정당이 43년 만에 다시 원내에 진출하여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은 여러 면에서 한국정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진정한 의미의 정책대결을 통해 한국의 정당들이 정책정당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당들은 입만 열면 정책정당으로의 발전과 건전한 정책대결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실제 나타난 것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정당들이 기본적으로 냉전적 보수냐, 개혁적 보수냐라는 차이만 있었을 뿐 보수정당 일색으로서 정당들 간의 이념적 차별성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은 정당들 간의 정책대결을 촉진시킬 것이다.

진보정당은 망국적인 지역주의 극복에도 기여할 것이다. 사실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린 이유 중 하나는 정당 간 이념적 차별성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당간에 차이가 별로 없어 같은 값이면 우리 지역정당을 찍자는 생각이 팽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이제 유권자들로 하여금 지역이 아니라 이념과 자신의 계층·계급적 이해관계에 의해 투표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당장 한국 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깨끗한 정치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기존 정당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부패했다는 점에서 진보정당이 갖는 가장 큰 경쟁력은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청렴성이다.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대선의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한나라당에 비해 10분의 1이 넘으면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상대적 청렴성을 주장했고, 검찰 조사에 따르면 10분의 1은 넘지만 한나라당의 810억원에 대해 8분의 1수준인 113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의 경우 단 1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지 않고도 대선을 치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민주노동당과 비교할 경우 노 대통령측의 성적표는 빵(0)원 대 113억원으로 권 후보가 노 대통령보다 10분의 1정도가 아니라 무한대로 깨끗했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당비를 내는 5만명의 진성당원을 거느리고 있고, 진성당원의 수라는 면에서는 한국최대의 정당이다.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들까지도 민주적인 당원 투표에 의해 선출하는 등 민주적인 당운영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어, 정당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신시대부터 '우상'에 도전해온 대표적인 지성인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진보정당이 부재하고 보수정당만이 지배해온 한국정치의 불구성을 "새는 좌, 우의 두 날개로 난다"는 표현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동안 '우'라는 한 개의 날개만 가지고 있어 날지 못하고 뒤뚱거려온 한국정치가 아직 부족하고 작지만 '좌'라는 날개를 가지게 되어, 좌우의 두 날개로 날게 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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