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하나다. 학교가 문을 연 것은 1701년. 개교 당시의 교명은 칼리지어트 스쿨이었고, 캠퍼스 위치도 인근의 세이브룩이었다. 뉴헤이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1717년이고, 예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 이듬해다. 예일이라는 교명은 어디서 온 것일까?뉴헤이븐에 학교 부지를 새로 마련한 칼리지어트 스쿨 당국자들에게는 건물을 지을 돈이 없었다. 독립파 목사들이 세운 이 학교의 이사장 코튼 매더는 엘리후 예일이라는 사업가를 접촉해 기부를 요청했다. 예일은 1700년대 초엽에는 상당히 큰 액수였던 560파운드 상당의 물품을 칼리지어트 스쿨에 기부했고, 학교 당국자들은 이 물품을 팔아 그 돈으로 교사(校舍)를 지을 수 있었다. 처음엔 이 건물의 이름으로 붙여졌던 예일은 이내 학교 이름이 되었고, 두 세기가 지난 오늘날엔 학문적 엘리티즘의 아우라를 지닌 말이 되었다. 560파운드가 큰 돈이었다고는 해도, 이 기부 행위가 제 이름을 이렇게 널리 알리게 될 줄은 엘리후 예일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엘리후 예일은 1649년 4월5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1721년 런던에서 죽었고 북웨일스의 렉스햄에 묻혔다. 북웨일스는 예일 집안의 원래 고향이다. 할머니 앤 료이드가 청교도 박해를 피해 매서추세츠로 이주하는 바람에 보스턴에서 태어나게 된 예일은 네 살 때 가족을 따라 영국으로 간 뒤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 식민지에는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칼리지어트 스쿨에 물품을 기부하지 않았다면 그의 이름이 미국사에 남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코튼 매더는 그의 은인이었다고 할 만하다. 당초 고전문학을 공부하던 예일은 동인도회사에 들어가 20년간 일하며 수완을 발휘해 큰 돈을 모았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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