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금강산에서 상봉행사를 마치고 3일 오후 휴전선 남쪽지역으로 돌아온 486명의 이산가족들은 말없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조건식 통일부 차관이 헐레벌떡 강원 고성까지 달려가 "남측 관계자의 잘못 때문에 상봉행사 일부가 무산된 점 사죄드린다"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이산가족들의 닫힌 마음을 녹여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2000년 8월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시작된 뒤 일정 일부가 취소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는 이번이 처음. 그것도 실무책임자인 통일부 직원의 어처구니 없는 말 실수 때문에 행사가 무산됐다. 이산가족들에게는 출발 하루 전 "북측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며 방북교육까지 했던 관계자가 북측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최고지도부 폄하 발언을 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후 정부의 대처방식이었다. 2일 오후 예정됐던 행사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고 남북이 접촉에 나선 수시간 동안 이산가족들은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 99세 할머니에서 3개월된 아기까지 이산가족들은 3시간여를 버스에 앉아 영문도 모른 채 기다려야 했다. 결국 행사가 취소됐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밤사이 불안에 떠는 이산가족들을 달래줄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남북회담이 일상화하면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이제 정부 입장에서는 큰 사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50년 이상 생이별했던 그들에게는 '인생의 최대행사'다. 화려한 회담 성과도 중요하지만 이 역시 남북 7,000만 민족의 기쁨을 위한 것 아닌가. 자신들의 실수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당국자들은 50년을 기다린 이산가족들을 사실상 두번 울린 셈이다.
정상원 정치부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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