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 지음 문학사상사 발행·전2권 각권 7,500원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권지예(44·사진)씨가 첫 장편 '아름다운 지옥'을 냈다. 1970년대 한 여자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작가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자전적 작품이다. 이상문학상 수상 당시 인터뷰에서 권씨는 열일곱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의 문재(文才)를 시기했었다고 털어놨었다. 그 동생의 이야기를 비롯한 가족사가 청량리 단층 기와집에서 모여 살았던 '지옥 같은 시절'의 얘기로 그려졌다.
화자인 혜진에게 아빠가 경제적으로 무능하면서도 정치의 꿈을 버리지 않는 모습은 속물 같았다. 먹고 살기 급급한 엄마는 돈에만 그악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철없지만 애틋한 동생들과 살 부비며 살아가던 어느날 병을 앓는 여동생이 소설을 쓰는 것을 보았다. '무섭도록 집중한 혜선이의 얼굴은 석양빛을 받아 다른 사람처럼 빛나고 있었다.'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리의 마음을 알게 됐다는 작가 권씨의 고백이 소설화한 장면이다. 죽음을 예감하고 쓴 소설을 언니의 이름으로 신문사 신춘문예에 내면서, 언니가 작가의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생의 모습에 가슴 한켠이 시큰해진다.
소녀는 사랑과 인생의 아픔을 겪으면서 어른이 된다. 혜진은 바깥채에 세든 작부 진숙의 삶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남자에게 마음을 내어주면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제목처럼 '아름다운 지옥'의 시절이었다.
"한 여자아이가 세상에 한 여성으로 태어나기까지, 그녀에게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삶의 편린들이 아프게 들어와 박혀야 하는 것일까"라고 권씨는 묻는다. 소설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들려주는 길고 슬프고도 다사로운 얘기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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