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래 조폭 아닙니까?" 한동안 유행했던 조폭 코미디영화 덕분에 조폭에 대한 인상이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나 보다. 물론 웃자고 한 얘기였겠지만. 최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아! 이 사람도 검찰 출신이다)이 스스로를 조폭 집단에 빗댄 것이나, 그 말에 좌중에 폭소가 터진 것이나, 농담으로만 넘기기엔 왠지 허탈하다.조폭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다. 우선 깍두기 머리, 검은색 양복, 그리고 날카로운 인상… 공공의 적! 그러고 보니 검찰도 비슷한 인상인 것 같다. 깍두기 머리는 아니지만 비슷한 머리 스타일, 권위 그 자체인 검은색 양복과 검은색 승용차, 그 앞에 서면 죄도 없는데 주눅들게 하는 눈빛…
패션은 한 집단이나 장소의 이미지, 정체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기도 하다. 굳이 스튜어디스나 군인처럼 제복을 입는 직업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작가처럼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패션은 일반 회사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개개인의 차이도 크지만 집단으로 모아놓으면 패션이나 머리 스타일, 행동 등등에서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실 검은색은 멋쟁이들이 즐겨 입는 색이기도 하다. 검은색이나 회색 등의 단색이 주는 미니멀한 우아함, 튀지 않는 세련됨은 그래서 갤러리 큐레이터들도 애용하는 색이다. 화려한 색의 옷은 전시장에서 작품이 돋보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우리나라에서 검은색은 권력과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색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검찰, 고급 공무원, 조폭 등 권위가 필요한(?) 집단은 검은색 양복을 즐겨 입고 사장, 국회의원 들은 한결같이 검은색 승용차를 타는가 보다.
다 검은색 양복 차림, 말 그대로 모아놓으니깐 영락없는 조폭 스타일의 법무부, 검찰 고위 인사들 가운데 다소 촌스럽지만 그날 유일하게 핑크색 정장, 액세서리까지 핑크색으로 코디한 강금실 법무장관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원래 이런 회의에는 검은색으로 통일하는 겁니까? 그래도 봄인데…"
내일은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옷을 입고 출근하고 싶다. 아 근데… 자신이 없다. 언제쯤 남들 눈치 안보고 입고 싶은 옷을 맘껏 입고 거리를 활보할 날이 올까?
윤 태 건 카이스갤러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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