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지음 푸른역사 발행·1만1,900원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 18세기 조선 최고의 천문학자 김 영이 죽자 어린시절 그에게 기하학을 배웠던 홍길주가 내뱉은 탄식이다. 김 영은 천문과 수학의 귀재이면서도 신분이 미천하다 하여 멸시와 천대를 받다 극심한 가난 속에 굶어 죽었다.
어찌 김 영 뿐이랴. 스스로 '책만 읽는 멍청이(看書痴)'이라 했던 이덕무는 당대 으뜸인 문장과 학문을 지니고도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평생 가난과 병고에 시달렸고, '홍길동전'을 쓴 또 한 명의 서얼 허 균은 그런 세상을 뒤엎을 혁명을 꿈꾸다 처형됐다.
'미쳐야 미친다'는 이처럼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온몸으로 세상을 건너며 눈부신 성취를 이룩했던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내면을 돌아보고 있다. 김 영 이덕무 허 균 권 필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 김득신 노 긍 등 이 책이 소개하는 인물들은 지은이가 서문에서 밝혔듯 대부분 그 시대의 주류가 아니라 주변 또는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던 안티 혹은 마이너다. 그때는 잘 알려진 대로 조선의 문예부흥기였지만, 엄격한 신분제도와 완고한 주자학적 규범은 여전히 창조적 지성을 짓누르는 족쇄였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 중인계급 시인 차좌일은 신분차별에 절망한 나머지 '영원토록 이 나라 사람이 되지 않겠다(永永世世 不願爲本方人也)'고 했다. 굶어죽은 과학자 김 영의 울분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오로지 정신의 칼날을 푸르게 세워 자신의 세계를 갈고 닦았던 이들 치열한 영혼의 초상을 지은이는 그리움이 가득 담긴 눈길로 더듬고 있다. '처참한 가난과 신분의 질곡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맹목적인 자기 확신, 추호의 의심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그들의 모습에서 그는 '나태와 안일에 젖었을 때 뒤통수를 후려치는 죽비 소리'를 듣는다.
지은이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은 '한시 미학 산책'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등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에서 이미 드러낸 대로 막힘 없는 글 솜씨로 그들의 삶과 이룬 바를 전한다. 아울러 그들이 남긴 멋진 문장과 일화를 통해 신분과 나이를 떠난 향기로운 사귐,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을 읽어내면서, 그에 견주어 부박하기 짝이 없는 오늘날 우리사회와 지식인의 몰골에 대한 비판적 감상을 덧붙이고 있다.
제목 '미쳐야 미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미친 듯 몰두하지 않고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열정과 광기는 세상의 벽에 부닥쳐 분노와 좌절을 삼켜야 했던 동서고금의 빼어난 인물들이 시대를 뚫고 나아간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