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지음 지오북 발행·1만4,000원
봄이면 온 산을 붉게 물들였던 진달래. 하지만 요즘은 흐드러진 진달래 구경이 쉽지 않다. 서식지가 줄어서? 공해 때문에?
광릉수목원 생물표본연구실장인 이유미 박사는 숲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달래는 벌거숭이산의 산성 토양에서 유난히 잘 사는데, 숲에 참나무가 늘어나고 땅이 비옥해져 여러 식물이 들어와 살면서 진달래가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달래가 줄었다고 마냥 아쉬워할 일만은 아니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는 나무와 숲에 대한 이씨의 편지 형식 글 모음이다. 한국일보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된 글 95편에 사진을 보탰다.
책에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식물의 세상살이가 가득하다. 지금 거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개나리는 열매가 거의 없다. 꽃가루와 씨방의 결합에 의해 태어나지 않고, 사람이 줄기를 자른 뒤 흙에 꽂아 뿌리를 내린 수꽃 개나리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닮지 않고 아버지와 똑 같은 복제품을 대량 생산한 것이다. 이제 복제에 익숙한 개나리는 자연상태에서 스스로 열매를 만들고 씨앗을 퍼뜨릴 능력도, 의지도 잃었다. 만약 사람이 개나리 심기를 중단한다면 순식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화려한 자태의 백목련은 북쪽을 향해 꽃봉오리가 핀다. 이를 두고 옛 사람들은 '북향화'라고도 부르고 임금님이 계신 북쪽을 바라본다며 '충정의 꽃'이라고도 했다. 왜 북쪽일까. 봄 햇살을 잘 받기 위해 꽃눈이 남쪽을 향하니 반대 방향의 꽃봉오리는 저절로 북쪽을 보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질기게 생명을 유지해가는 식물의 저력과 지혜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인간 세상이 식물 세상을 닮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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