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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마다 축제

입력
2004.04.03 00:00
0 0

강영숙 지음 창비 발행·8,500원

"나는 애초에 이 도시에 온 것부터가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날마다 축제'에서)

도시 뿐일까. 이 일을 시작한 것부터가, 이 사람을 사랑한 것부터가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멈추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마음 한편으로 망설이면서도 또 다른 마음의 한편은 관성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우리 삶 전체를 이루는 것은 그런 순간들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단편소설은 바로 그런 삶의 순간순간을 붙잡아내는 것이다.

강영숙(38)씨가 두번째 소설집 '날마다 축제'를 냈다. 그는 차분하게, 그러나 매우 부지런히 소설을 써온 작가다. 2년 만에 낸 창작집에는 9편의 단편이 묶였다. "나는 삶과 유리된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총체적인 삶과 대면하고 있는 인간을 그리고 싶었고, 뜨겁고 격렬한 서사를 가라앉히는 쿨한 문장을 갖고 싶었다." 강씨는 총체적인 삶과 대면하는 방식으로 '환상에 몰입하기'를 택했고, 새 소설집에서 환상적 이미지는 좀더 짙어졌다. 작가는 그 환상을 통해 거꾸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황폐함과 현대인의 내면의 불구성을 고발한다.

'날마다 축제'에서 여자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밴드가 연주하고 여자들이 춤을 추는 축제가 날마다 열린다. 아이를 낳은 여자는 남자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여자는 아이와 함께 하는 환상에 종종 빠지면서 아이를 찾아 헤맨다. 그곳을 떠돌면서 여자가 만나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위로를 얻을 수 없는 도시의 황량함이다. '골목을 돌아, 생선 냄새가 나는 시장 난전을 지나, 아이들이 돈을 내고 타는 목마가 있는 완구점을 지났다. 길을 똑바로 못가고 비척거리다가 골목 한켠에 세워둔 쓰레기통에 얼굴을 부딪혀 쓰려졌다. 배춧잎, 국수가닥, 쉰 밥, 신문지 뭉치, 과일껍질, 생선꼬리, 닭뼈 같은 것들이 내 얼굴 바로 옆에 있었다.' 작가가 또 '봄밤'에서 화려한 밤이 지난 뒤 오물이 굴러다니고 캐릭터 인형이 구겨져 박혀있는 놀이공원을 묘사하는 장면은, 매우 섬세한 문장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그늘과 맞닥뜨리는 체험이어서 쓸쓸하다.

도시를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로 밀어붙이는 것은 단편 '씨티투어버스'에서다. 무더운 여름을 맞은 도시는 지독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고, 공항 폐쇄조치를 앞두고 있어 불안하다. 도시를 순환하는 시내관광버스 안에 몸을 둔 사람들은 창 밖의 도시만큼이나 비틀려 있다. 남편과 싸워 온몸에 멍이 든 여자, 담배를 피우겠다고 기사와 다투는 외국인, 하루종일 맡은 고기 냄새에 질려 구토하는 햄버거가게 점원 등이 그렇다. 소설은 들소가 트럭과 부딪혀 피를 흘리며 죽는 환상적 이미지로 맺어진다.

작가는 "밤과 낮, 성과 속, 현실과 환영이 뒤범벅된 아주 특별한 텍스트를 꿈꾼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작품 속에 그 맹아(萌芽)가 들어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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