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권 글·김병하 그림 길벗어린이 발행·7,800원
도시 아이들도 이런 즐거움을 알까. 넘실대는 보리밭에서 숨바꼭질하고, 꿩 새끼와 개구리를 좇으며, 보리를 구워 먹는 맛과 재미. '보리밭은 재미있다'를 보고 있으면 차츰 사라져가는 옛날 보리밭의 싱싱한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건강하고 소박한 삶이 그대로 다가온다.
이 책은 잔설이 남아있는 밭에서 얼지 않고 잘 자라도록 밟아주는 '보리밟기'부터, 싹이 자라고 꽃이 피고 보리가 여물어 타작을 끝낸 후 텅 빈 밭이 되기까지의 모습을 따스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이른 봄날 때늦은 눈이 내리자 온 식구들은 보리밭으로 나간다. 모처럼 눈싸움을 하려고 했던 아이들은 뾰로통한 얼굴로 따라가지만 줄지어 밟다 보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도 맺히고 가끔 웃음도 터져 나온다.
보리 이삭이 아이들 키만큼 자라면 놀이도 다양해진다. 보리밭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보리밭에 누워 곤충이름, 풀 이름 대기로 시간을 보낸다. 어쩌다 엄마 아빠에게 꾸중이라도 들은 날에는 혼자서 보리밭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타작하는 날엔 까끄라기가 살갗에 달라붙어 가렵고 쓰린 몸을 보릿대 속에 만든 굴에서 달래기도 한다. 한 장씩 넘기는 동안 농촌을 잘 모르는 도시 아이들도 보리밭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게 만든다.
이와 비슷한 구성과 내용의 그림책이 여럿 있지만 이 책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보리가 중심이 아니라, 아이들의 순박한 마음과 재미 있는 놀이를 생활사 박물관처럼 엮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병하씨의 부드럽고 생동감 넘치는 세밀화는 탁월하다. 개구쟁이들의 장난기 짙은 표정과 그 곁을 떠나지 않는 누렁이, 호랑나비, 귀여운 흑염소들은 정겹고 친근하다. 그림만 보고 있어도 보리밭이 그립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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