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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가 고른 책]B급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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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가 고른 책]B급 좌파

입력
2004.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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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지음 야간비행 발행

자신의 입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름답다. '먹는 입'을 책임지는 사람도 물론 그렇지만 '말하는 입'을 책임지는 사람은 특히 더 아름답다. 오랫동안 출판계에 몸 담고 살면서 무엇보다 '말하는 입'에 해당하는 책임을 방기하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그가 써내는 글과 그의 사람됨이 정확히 반대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한때는 비주류권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주류권을 비판하던 사람이 운 좋게도(?) 주류에 편입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태도를 바꾸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그들의 신념은 평생을 건 것이 아니라 비주류의 딱지를 떼기 전까지만 유효한 그런 값싼 신념이었을 테고, 그들의 비판은 단순히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들에 대한 시기심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김규항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좌파'이기 때문이 아니라 'B급'이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를 'B급'이라 칭했을 때, 나는 그것을 김규항 스스로가 자신을 비주류로 단단히 못박는 작업이며 또한 스스로의 '말하는 입'을 책임지겠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조차 장식으로 남발하는 A급 이론가가 되는 일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해 나가는 B급 실천가가 되는 일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이며, 얼마나 더 세상에 유익한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 것도 물론 그의 글 덕분이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좌파로서 세상을 향해 얘기하는 것들이 사실은 좌파나 우파, 진보나 보수를 가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인간다움의 옳고 그름을 가름하는 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를 좌파라 내세우고도 별 탈 없이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나, 대통령에게 허물이 있다 하여 탄핵을 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된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 탄핵이 정치적 신념이나 소신 때문이 아니라 단지 권력을 향한 조급한 욕심과 기득권의 유지를 위한 뒷거래에서 비롯된 것은 추한 일이며, 탄핵가결 이후 정치권이 합동으로 연출하고 있는 저 순발력(?) 있는 각종 눈치작전과 기회주의적 행태는 추하다 못해 자못 개그적이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간절하게 '국민'을 되뇌는 바로 '그 입'을 건사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는 그들 모두에게, 그릇된 집단의 신념이 아니라 올바른 개인의 양심을 가르치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김미숙·이마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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