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감독 멜 깁슨)에 대해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이미 보았던 여러 편의 예수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영화라면 무릇 생각의 허를 찌르는 반전의 묘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든 흥미를 끌지 못하는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볼 때도 그랬다. 모든 내용과 결론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영화를 보는 마음이 무덤덤하기만 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 나의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실적인 음향효과는 시공을 초월해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이 영화의 대사가 과거 영화와 달리 예수가 살던 시대의 언어인 아랍어와 라틴어라는 점은 현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예수의 대사는 감동 그 자체였을 것이다. 영화의 대사 대부분을 성서에서 인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쟁점이 됐던 반유다주의적 요소는 거의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 가톨릭교회도 대체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을 이미 내놓았다.
반면 개봉 초기부터 예수의 수난을 너무 잔인하게 묘사했다는 점이 논란거리가 된 것은 사실이다. 예수가 유다인들에게 구타 당해 눈이 부어있는 장면, 로마군인의 채찍질로 살점이 터져 피가 흥건한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폭력성은 실제상황에서 더 참혹하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인간의 그 같은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 어머니 마리아의 슬퍼하는 눈길은 영화에서 큰 감동을 주는 대목이다. 어머니 마리아가 자식에 대한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사랑을 대변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그리스도교 신자는 성서를 읽고 묵상할 때 오감을 이용해 관상기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성서는 글이기 때문에 관상기도 과정에서 상상력을 동원한다. 물론 모든 기도 중의 상상과 생각은 성서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마치 관상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허영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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