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멸종했을 겁니다.”‘한국의 에디슨’이라 불리는 발명 천재 신석균씨의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조금만 추워도 덜덜 떨고, 독거미만 봐도 소스라치는 연약한 인간이 여느 생물보다 나은 것이라곤 조금 더 큰 뇌 하나 뿐일지 모르죠.
따스한 봄 기운에 온 몸이 나른해지고 머리속도 멍해지죠. 요즘 같으면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닌다’는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요. 자, 이제 그만 기지개를 켜고 뇌 운동을 해 봅시다. 그렇다고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어려운 수학 문제집을 꺼내들 필요는 없습니다. 외울 것은 종이에 써두고 계산은 계산기에게 맡기고, 인간의 뇌만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 발명에 눈을 돌려보세요.
발명은 몇몇 천재들이 하는 것이라거나 뭔가 엄청난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세요. 문자로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 반신욕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욕조 덮개, 뜨거운 종이 컵을 들고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골판지 커버…. 너무 소박하다 싶은 깜찍한 아이디어들이 세상에 가득하지 않나요.
우리 주위에 발명품이 아닌 것은 자연 뿐입니다. 발명한다고 아인슈타인처럼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어둡고 지저분한 작업실을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삼겹살이 익기도 전에 먹어버리는 얄미운 동료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샤워하면서 휴대폰을 받을 수 있다면’, ‘열쇠를 어디 뒀는지 찾는 일이 너무 귀찮아’…. 이런 소소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면 이미 발명의 반은 이룬 것입니다.
에디슨은 “발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지요. 생활 속에서 샘솟는 작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바로 발명입니다.
‘과학의 달’ 4월, 세상을 멋지고 편리하게 바꾸는 발명의 흥미진진한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글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이런 발명 나도 하겠다!
코감기 환자를 위한 두루마리 휴지 헬멧, 지하철에서 서서 잘 수 있게 해주는 턱 받침대, 머리 긴 사람이 쉽게 라면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고무 얼굴 보호기…. 최근 인터넷에서 떠도는 '엽기일본 발명품' 시리즈에 등장하는 물건들이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에 게재된 '2003년 가장 쿨(cool)한 발명품'도 재미있다. 무거운 집기를 가볍게 옮길 수 있게 한 '근력 보조 옷', 골퍼를 따라다니며 골프채를 옮겨주는 '로봇 캐디', 스위치를 켜면 8만볼트의 전류가 흘러 여성의 안전을 지켜주는 '만지지마 재킷(no contact jacket)' 등이 대표적인 제품.
국내에서 특허 등록된 제품 중에 무릎을 치게 하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제품을 모았다.
바지형 침낭
발명자 최문식
침낭에서 잠을 잘 때 갑갑함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샌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지형 침낭은 한마디로 '옷 모양 침낭'이다. 침낭에 팔 다리 부분을 붙여 움직임을 자유롭게 했고 자다가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처럼 급한 용무가 있을 때는 침낭에 몸이 들어간 상태로 바로 이동할 수 있어 편리하다.
두루마리 양념소금
발명자 이미자
양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소금이 쏟아져 나왔을 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루마리 양념 소금'은 소금을 넣은 반죽을 두루마리 종이 위에 발라 말린 후 필요한 양만큼 떼내어 쓰게 한 제품이다. 종이와 소금 사이에 얇은 비닐을 넣어 뜯어 쓰기 쉽게 했다.
물받이 기능 우산
발명자 정용석
언제부턴가 비오는 날 건물에 들어가려면 비닐로 된 우산 커버를 씌워야 하는데 빗물이 손과 옷에 묻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물받이 기능 우산은 우산 끝에 간단히 씌우는 커버로, 우산을 접었을 때 빗물이 커버에 고이게 설계됐다. 고인 물은 단추를 열어 쉽게 빼낼 수 있다.
반디라이트 볼펜
발명자 김동환
밤에 교통 경찰이 목과 어깨 사이에 손전등을 어렵게 끼워 티켓을 끊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 볼펜 끝부분에 형광물체를 달아 밤에도 쉽게 필기할 수 있게 해주는 볼펜이다. 이 제품은 수출로만 약 65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발명에도 공식이 있다!
발명에도 방법과 전략이 있다. 수학 공식처럼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물건들을 더하고 빼고 나누면 새로운 발명품이 태어나게 된다. 한국발명진흥회 왕연중 특허관리진흥팀장이 발명의 열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더해보자
대표적인 예가 지우가 달린 연필이다. 가난한 청년 화가였던 하이만이 자꾸 지우개를 잃어버려 이를 잘 보관하기 위해 발명했다.
빼보자
일본 소니의 최대 히트작 '워크맨'이 빼기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워크맨이 만들어지던 시절 소형 카세트 레코더는 주로 기자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녹음이 주 기능에 재생이 옵션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여기에 녹음 기능을 빼 상식을 뒤엎는 재생 전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만들어냈다.
아이디어를 빌려보자
일본의 '무까이'라는 회사의 사장은 '먹이를 먹으러 들어가면 못나오는 쥐덫'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먹이를 먹으러 들어가면 못나오는 바퀴벌레 덫'을 발명했다. 그 발명품은 6억엔(약 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크게 하고 작게 해보자
같은 기능을 지닌 작거나 큰 제품을 만드는 것도 발명이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도넛이 작게 만든 발명품의 대표적인 예다. 반대로 한번에 많은 옷을 빨게 해주는 대용량 세탁기는 크게 만든 발명품이다.
모양을 바꿔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이드는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케이스의 바탕색을 초록색에서 흰색으로 바꿔 절감한 인쇄비로 안쪽에 빨간 태양 모양의 상표를 인쇄했다. 담배를 다 핀 후 버려진 케이스의 광고 효과를 노린 이 발상으로 매출은 20% 늘어났다.
용도를 바꿔보자
신경통 치료를 위해 스케이트를 즐기던 외판원 출신 플림톤. 날이 따스해져 스케이트를 탈 수 없게 되자 날을 떼어내고 바퀴를 달아 롤러 스케이트를 만들어냈다. 천막용으로 쓰던 청 소재를 바지로 만든 리바이스 스트라우스도 대표적이다.
재료를 바꿔보자
미국의 대학생 휴그무어가 생수 자판기의 자기 컵이 자꾸 깨지는 것을 보고 만든 종이컵은 재료를 바꿔 만든 발명품이다. 새의 깃털을 사용해 가격이 비쌌던 배드민턴 공을 플라스틱으로 개조해 가격을 낮춘 것도 여기 속한다.
반대로 해보자
어린이들이 즐겨 쓰는 벙어리 장갑은 양말에서 따왔고 발가락 양말은 장갑에서 따온 것이다. 깔끔하게 만드는 것에만 주력하던 전기 콘센트 줄을 길게 뺀 마쓰시다 전기 주식회사 제품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만들어졌다.
폐품을 이용해보자
이 방법은 우리 조상들이 많이 이용했던 방법이다. 못 쓰는 종이를 모아 물에 불려 종이죽을 만들고 깨진 기와로 화단을 둘렀다. 옷을 만들고 남은 천을 모아 만든 퀼트도 폐품 이용 발명품.
■유쾌한 괴짜 인생들-발명에 대한 몇가지 오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다. 지난 10년간 젓가락 관련 특허 출원이 150건에 이르는 것을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젓가락 끝에 포크가 달린 복합형, 음식 집는 부분이 바닥에 닿지 않게 한 젓가락 등 더 편한 식사시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노력은 일본과 중국을 크게 앞지른다.
주위에서 발명되지 않은 물건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삶 깊숙이 들어와있는 발명. 그러나 막연한 편견이나 오해도 적지 않다. 발명에 관한 편견과 오해만 버리만 당신도 언제든 발명가가 될 수 있다.
출원이 1분만 늦어도 아무 권리가 없다
"전화기는 1876년 미국의 A.G. 벨에 의해 세계 최초로 발명됐다." 한 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이자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반면 영국의 물리학자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전화기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 벨의 특허신청 시간이 그레이보다 1시간 빨랐기 때문이다.
남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기발한 발명품을 고안해낸 당신. 기쁨에 겨워 친구들에게 한턱 낼 생각부터 한다면 산업 재산권을 도둑맞기 십상이다. 산업 재산권이란 특허와 실용신안 등 새로운 발명품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독점권을 뜻한다. 산업 재산권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디어가 최대자산인 시대니 만큼 발 빠른 출원은 필수다. 물론 지금은 1시간 늦게 특허를 출원했다고 모든 권리를 박탈하지는 않는다. 대신 같은 날 신청한 이들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진다. 따라서 신청자들이 권리를 공유하기로 합의하거나 한 사람에게 권리를 몰아주고 나머지는 특허권을 포기, 혹은 양보해야 한다.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출원 자체가 무효로 돌아간다.
새로운 것은 모두 발명품이다
인간을 해롭게 하는 것은 아무리 독창적이어도 산업 재산권을 따낼 수 없다. 현재 국내외 특허 관련 법들은 자살기계, 대량살상무기 등 인류에 위해를 가하는 물건이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인류에 위해를 가한다'는 부분에 대한 논란은 줄곧 이어진다. 예를 들어 동물복제 기술의 경우 영국 등 몇몇 나라는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지만 그 밖의 나라들은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물건도 발명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물로 가는 자동차, 즉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장치를 달아 차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은 이미 가능하다. 문제는 분해장치의 가격과 크기가 자동차 본체의 몇 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지적 재산권을 인정받으려면 경제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발명품은 반드시 눈에 보여야 한다
한국발명단체총연합회 이해남 총장은 지난해 상표권을 가지고 있던 '한국과학발명영재단'에 대해 7,000만원의 사용료를 받았다. 이 총장은 "시대의 흐름을 잘파악한 상표 역시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음식물, 특히 김치에 관한 조리법이 줄줄이 등록됐다. 무즙, 새우젓 같은 첨가물을 추가하거나 공정 전체를 제대로 정리만 해도 지적 재산권을 인정 받을 수 있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 영어처럼 전 세계에 수출할 수 있다면 이 역시 발명품이다. 얼마 전에는 '코를 덜 골기 위한 수면법'에 관한 산업 재산권이 인정됐다. 만약 '미끌미끌한 음식을 잘 집을 수 있는 젓가락질', '시간을 단축시킨 화장법' 등을 만들어낸다면 이에 관한 권리를 신청해봄 직하다. 작곡가 J. S. 바하가 살던 시대에 산업 재산권 개념이 있었다면 그는 '음계'에 대한 특허를 출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발명을 많이 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다
발명가들은 "첫 발명이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아이디어가 갑자기 쏟아져 나온다"라고 말한다. 일생 수백개의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과연 머리가 좋은 타고난 천재일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좌뇌―우뇌 이론은 사실 발명가에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 좌뇌가 논리적인 부분을 관장하고 우뇌가 감성적 영역을 책임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공인된 사실이나 창의성이 감성적 영역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양대 병원 신경정신과 양병환 박사는 "발명을 잘하는 사람은 우뇌가 발달했다거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우뇌를 개발하는 훈련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못박았다.
발명을 잘 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생활 방식에 있다. 한 번 떠오른 아이디어를 끝까지 잡고 있는 미련스러운 고집과 셔츠 주머니에 늘 볼펜과 종이를 넣어 다니며 아무리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적어두는 습관이 발명가를 만든다.
/송영창기자 hermeet@hk.co.kr
■발명합시다-평택 지장초등교 발명부
'여러분이 조물주가 되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아주 독특한 물고기를 만들어 보세요. 아래 그려진 물고기 꼬리를 이용해서요.'
이 같은 질문을 받아 든 어른들의 눈 앞에는 광어, 꽁치, 굴비 등 늘 먹던 생선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답변은 달랐다.
'다이아몬드 물고기―몸이 다이아몬드고 다이아몬드 알을 낳는다. 다이아몬드로 된 뾰족한 지느러미로 적을 물리친다.'
'지느러미 새―지느러미가 날개 모양으로 돼있어 이를 이용해 하늘을 난다.'
'물오리―털 대신 비늘로 덮인 오리. 물 속에서 헤엄을 친다. 알은 날개 사이에 숨긴다.'
'헬리 물고기―머리에 프로펠러가 달려서 물에서 수영하다가 멀리 이동해야 할 경우 헬리콥터처럼 날아간다.'
경기 평택시 서정동에 위치한 지장초등학교 발명부 특별활동 시간에 나온 것이다. 활동을 시작한 1999년 이후 전국 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 등에서 학교 단체상 26회, 특허청 우수 발명상 3회, 발명의 날 국무총리표창 등을 수상한 '발명 특화학교'답게 발명부 수업은 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3∼6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발명부에 가입한 아이는 40여명. 이와 별도로 평택시 교육청 발명공작교실도 함께 운영하는데 지원자가 많아 시험으로 학생을 뽑는다. 경쟁률은 평균 5대1.
지장초등학교에 발명 바람을 몰아온 사람은 성원용(54) 교감. 젊을 때부터 조립식 비행기 만드는 것을 즐기다가 자연스럽게 발명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이 학교에 부임하기 직전인 99년 4월부터 교육청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발명공작교실을 이끌었다.
"발명 수업시간이면 아이들의 달라지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같은 물건을 봐도 다르게 생각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엉뚱한 질문을 하는 아이들도 부쩍 늘어 교실에 활기가 넘칩니다. 전에 면담한 한 발명부 학생의 학부모는 '아이가 사소한 것까지 들여다보고 질문해 시장 데리고 가기 짜증난다'고 농담 삼아 말씀하시더군요."
발명부에서 만난 5학년 탁성원(12)군. 발명 관련 상만 60여회 수상했다. 퍼즐 시계, 다용도 청소도구, 지압지팡이 등 갖가지 발명품을 만들어낸 탁군의 이야기가 자못 진지하다. "발명부에 들어와 활동하면서 궁금한 게 너무 많아졌어요. 건전지는 왜 동그란지, 거북선은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뜨거운 불의 색깔은 왜 여러 가지인지…. 궁금증을 풀어주거나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유쾌한 괴짜 인생들-발명가의 세계
어둡고 좁은 작업실 한 구석에서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연구에 몰두하는 흰 머리 아저씨. 그에게 온갖 도구를 덕지덕지 붙인 헬멧을 씌워주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발명가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하다', '한번 시작한 연구는 세간을 팔아서라도 끝내고 만다', '고집이 무섭게 세 수십 년 동안 한가지만 파고들고도 지겨운 줄 모른다'…. 발명으로 먹고 사는 이들은 이 같은 얘기에 대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말한다. 가족도 못 말릴 정도로 고집이 세고 주변에서 괴짜 소리 몇 번씩은 꼭 들어봤다는 이들.
그러나 이들의 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발명이란 그저 생활의 불편한 부분을 고치려는 소박한 아이디어가 결실을 맺은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명하는 순간의 짜릿함 때문에 발명
"발명, 이거 완전 마약입니다.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를 몇 년 동안 붙잡고 있다가 드디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냈을 때, 그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 끝내면 또 시작하고, 연구하다 안 풀리면 밤 새고 그러는 거죠."
계량기 전문 생산업체 (주)신한정밀의 전석락(54) 사장. 원격 검침용 가스미터 센서, 수도 계량기 투시창 , 냉온수도 계량기의 불순물 제거장치 등 10년 동안 '하나 끝내면 또 시작해' 만들어낸 발명품이 65개에 달하는 베테랑 발명가다. 회사는 물론 그가 발명한 제품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95년 발명한 '전관자계를 이용한 전자 유량계'로, 장장 2년을 끈덕지게 쏟아부은 끝에 탄생한 제품이다.
"회계를 전공하고 계량기 생산업체에 관리직으로 들어갔다가 계량기를 전부 수입해 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계량기에 관련된 발명을 조금씩 시작해 첫 특허는 95년에 받아냈습니다. 한번 성공하고 나니 그 때부터는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더군요."
지금도 전 사장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회사 2층 한 구석에 마련된 3평 남짓한 연구실. 각종 계량기와 작업도구가 가득한 이 방에서 그는 일주일씩 밤을 새가며 회사를 이끌어갈 아이디어를 생산해낸다.
"발명하는 사장이 있어서 좋겠다고요? 하하, 사장이 발명하니깐 아무도 못 막는 거지, 기업체 연구팀 같으면 채산성이다 뭐다 이것저것 따지느라 몇 걸음 가지도 못했을 거예요. 꼭 돈 때문에 발명에 몰두하는 건 아닙니다. 처음 생각한 아이디어가 꽉 막혔을 때의 속쓰림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요. 몇 년이 걸려도 될 때까지 해야 한다니까요."
아버지의 발명 습관을 보고 자란 대학생 아들도 소리소문 없이 '안전맹인견 줄'을 발명, 지난해 산업자원부 장관상까지 받았다.
김봉택(56)씨와 김효상(21)씨도 '부자(父子)' 발명가다. 대학생이었던 1960년대 후반 자취생활을 하던 아버지 김씨는 값싼 문간방에서 지내며 밤낮없이 오가는 이들의 문을 따줘야 했다. 그래서 잠 좀 편하게 자기 위해 '전자궤정장치'를 고안했는데 이것이 그의 첫 발명품.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여는 전자식 자물쇠인 이 제품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그때부터 그가 특허 출원한 제품은 130여개로 독일국제발명품 동상, 과학의 날 산업포장 등 10여 차례 발명 관련 상도 이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삐삐(무선호출기)'를 이용한 화초 물주는 기계 '삐삐 농장'으로 그 해 교육청 주최 발명품 경진대회 금상을 받은 아들 효상씨는 지난해 말 해병대에 입대할 때까지 12개의 특허출원을 했다.
"어릴 때 집에 있는 시계, 라디오, 카메라도 모자라 동네 기계란 기계는 모두 해부하고 다녔죠. 아들도 저를 닮았는지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뜯었다 붙였다 하며 많이도 망가뜨리더군요. 저야 왜 망가졌는지 설명해주지만 아내는 모르긴 몰라도 속 좀 썩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과 얘기하다가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수첩을 늘 갖고 다니며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어두는 것도 저와 아들의 공통점이죠."
김씨의 발명 원칙은 '2―2―2' 시스템.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2주 내에 정보를 뒤져 이미 특허가 출원 됐는지 알아보고 2개월 내에 기초 제품을 만들어 사업성을 판단한 후 2년 내에 상품화를 끝낸다.
몇 년이고 매달리는 집념 있어야
현금이 가득 든 가방을 낚아채 도망가는 소매치기, 특히 오토바이를 탄 '날치기'는 좀처럼 잡을 재간이 없다. 주변에서 비슷한 피해를 당한 사람을 종종 목격해온 전국장애인기업협회 진형조(54) 회장은 1991년 '전자충격 서류 가방'을 발명했다. 가방에 내장된 장치의 스위치를 켜두면 주인과 일정 거리 이상 떨어졌을 때 보이지 않게 내장된 전선에 전류가 흘러 '악당'은 쓰러지게 된다.
군 생활 중 수류탄이 잘못 터지는 바람에 오른손 손가락을 잃은 진 회장은 89년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 하나에 2년 동안 매달려 특허를 얻어냈다. 그가 직접 생산하기 시작한 이 제품은 지난해 로열티를 받기로 하고 회사를 넘길 때까지 약 1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연구기간 동안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4억원을 모두 부어가며 매달린 집념이 준 선물이었다.
"발명이 반드시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남들처럼 할 수 있는 활동이 바로 발명이죠. 물론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지만 찾아보면 다양한 지원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입니다. 한 번 성공하면 주변에서 인정받는 기쁨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탄력이 붙죠."
부탄가스 폐기용 핀, 정전기 방지 지압 브러시, 아이가 멀어지면 경보가 울리는 미아 보호기 등 그의 발명품은 40건을 넘는다. 지팡이 끝에 수분 감지기를 붙인 시각장애인용 지팡이, 물이 넘치는 것을 막아주는 욕조 계측기 등 머리 속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금도 솟아나는 중이다.
86년 '택시 문 자동 개폐기'를 발명한 이해남(45)씨. 90년 택시 강도 예방용 유리 칸막이를 발명해 판매하다 총판이 부도나는 바람에 1년 동안 감옥살이까지 했다. 91년 사회로 돌아왔을 때 사무실은 폐허가 돼 있었다. 남은 것은 '모터가 내장된 팔받침'이라는 제품 명이 적힌 너덜너덜한 특허 등록증 하나. 그 해 산자부에서 주최한 '우수발명품전시회' 우수상에 선정된 이 제품을 한 자동차 회사가 경차에 부착하면서 받아낸 로열티 3,000만원은 그에게 재기의 종자돈이 됐다. 그러나 마음 고생은 이어졌다.
"대기업에서 제가 발명한 제품에 대해 '실용신안권리법인 확인소송'을 걸었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발명한 것이 아니니 그냥 쓰겠다는 거죠. 몇 년 동안 홀로 싸우다 결국 97년, 62년에 비슷한 제품이 나온 적이 있었다는 이유로 패소했습니다. 3,000만원은 제조업체에서 예의상 준 돈이었죠."
그 후로 그는 남의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기업체를 '때려잡으러' 다니는 모방 방지 운동을 했다. 그 사이에도 틈틈이 교육용 완구 등을 발명한 이씨는 97년 5월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발명 운동가로 나섰다. 지난해 2월 발명 전문지인 '발명 이야기'도 창간했다. 꾸준히 발명의 중요성을 전도하고 다니면서 99년 '발명의 날(5월19일)'을 부활시키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개인이 발명한 기술을 쓰려면 로열티를 지불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합니다. 물통 하나를 만들어도 20가지 이상의 산업재산권이 연관돼 있습니다. 암기력에 연연하지 마세요. 기억해야 할 것은 메모한 뒤 바로 잊어버리고 머리에게는 새로운 것을 생각할 여유를 주십시오. 발명하는 순간의 짜릿함이 로또보다 더 좋다니깐요."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발명합시다-지적 재산권 내는법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발명에도 적용된다. 아무리 좋은 발명을 했더라도 이에 대한 독점권을 신청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디어에, 즉 지적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통틀어 지적 재산권이라 하며 이는 다시 저작권과 산업 재산권으로 나뉜다.
산업 재산권은 다시 특허, 실용신안, 의장, 상표로 나눠진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이나 물건에 대한 것이 특허, 이미 있는 물건에 편리성을 더했다면 실용신안, 겉모양을 더 아름답게 바꿨다면 의장, 브랜드 관련 아이디어는 상표다.
특허는 20년, 실용신안은 10년, 의장은 15년, 상표는 10년(갱신 가능) 동안 독점 권리를 준다.
출원에서 등록까지 기간은 평균 1년 정도 걸린다. 주의할 점은 매년 권리를 갱신해야 한다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발명해 실용신안을 받은 '각도 조절 독서대'도 이를 소홀히 해 권리를 상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리사는 번거로운 특허출원 과정을 대행해주는 직업. 한국발명진흥회 왕연중 특허관리진흥팀장은 "특허청에서 전자 출원 서비스를 마련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지만 단어 하나로 등록 여부가 결정될 정도로 심사가 까다롭기 때문에 일반인이 처리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변리사를 통할 것을 권했다. 비용은 출원 대상에 따라 30만∼100만원 정도.
1984년 국제특허협력조약(PCT)에 가입한 이후로 국내에서도 국제특허 출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비용이 80만원 이상인 만큼 특허 취득후 경제성이 있을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인터뷰-한국발명학회 신석균 회장
입구를 찾기도 힘든 허름한 건물의 지하에 종이로 만든 얇은 간판. 그 곳이 '한국의 에디슨'이라 불리며 3,000여건을 발명한 한국발명학회 신석균(74) 회장의 작업실이다. 그의 발명품은 무한 회전 자동응답 테이프, 액체 렌즈, 임신 조절 컴퓨터, 태양열 라디오 모자, 초미니 만능 위조지폐 감식기 등 이름만 나열해도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학회 사무실이라고는 하지만 벽을 가득 채운 책과 상장만 눈에 띌 뿐이고, 여성 사무원이 유일한 직원이다.
"발명하는 사람들은 작업실에 다른 이들이 드나드는 것을 원치 않아요. 비밀이 많거든요. 대부분의 작업은 머리에서 하는데, 근사한 사무실이 꼭 필요한가요. "
1991∼1997년 초등학교 5학년 사회과학탐구 교과서에 '한국의 에디슨'으로 실렸던 신 회장은 다섯 살 때 첫 발명을 시작해 83년 세운 '매일 한건 발명, 매주 한건 특허출원'의 원칙을 20년째 지켜오고 있다. 도쿄 세계 천재회의 대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고 93년부터 제네바 국제 발명품 및 신기술전시회에 참가, 137개의 메달을 획득해 기네스북에 '발명 전시회 최다 메달 수상자'로 올랐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그의 수첩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하다.
"이것 보세요. 다이어리에 하루에 하나씩 발명 아이디어를 적어 두죠. 아이디어가 넘치면 다음날 칸을 미리 쓰고요…."
아니나 다를까 벌써 나흘 뒤 아이디어까지 미리 적혀있다. 혹시 수첩을 잃어버리더라도 다른 이가 신 회장의 생각을 도용하지 못하게 영어 한국어 러시아어 중국어 불어 등 5개 언어로 쓰여진 이 수첩은 암호문 책자를 방불케 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격려가 지금의 그를 만드는 가장 큰 밑거름이었다. 수박과 오이를 접붙이겠다며 과수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처음 보는 기계는 모두 분해했는데도 야단은커녕 오히려 어린 아들을 다독거렸다. 게다가 망가진 물건들을 갖다 주며 뜯어보라고 격려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정답을 가르쳐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고구마에 제 이름을 파서 도장을 만들었는데 자꾸 이름이 거꾸로 찍히는 거예요. 어머니는 당신 도장을 새겨서 제대로 찍힌 모양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했을까'라고 질문만 하셨지요. 축음기에서 소리가 나는 원리를 물었을 때도 '젓가락으로 놋그릇을 두드렸을 때 그 사이에서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라고만 하셨어요. 바늘이나 아카시아나무 가시 같은 걸로 레코드 판을 긁어보면서 원리를 깨우쳤죠."
그는 발명이 고스톱이나 골프처럼 책으로 공부해서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막연하지만 막상 해보면 방법을 깨우쳐 점점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발명의 즐거움을 깨닫도록 신 회장은 '발명대학'을 기획하고 있다. 기초과학 위주의 강의로 발명하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 "발명하고 싶으세요? 그럼 오늘부터 아이디어 일기를 쓰세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실패가 아닙니다. 땅을 계속 파면 물이 나오게 돼 있어요. 끈기를 가지십시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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