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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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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 3편

입력
200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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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성서에 기초한 서사물조차 이제 문학적 상상력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해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 당해 유대인 제사장들에게 끌려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예수의 삶의 마지막 12시간을 담은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형식 때문에 오히려 혁신적으로 보인다.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라 부드럽게 찢어지고 갈라지는 예수의 육체다. 걸레처럼 너덜너덜한 예수의 육신을 묘사하면서 복음서에 전해 내려오는 예수의 희생을 ‘육체화’시켜 고작 2차원의 평면에 투사되는 스크린에 실제 관객이 마치 자기 살이 찢기는 것과 같은 유사 감각의 극한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건 종래의 예수 전기영화에 비해 진일보한 혁신일까.

이 영화의 역설은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겉모양과는 달리 실제 사실주의 영화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발상이 창의적이고 매 순간 관객을 아프게 만들지만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않는다.

선과 악의 극한 대립을 통해서만 관객을 주인공의 심리에 극적으로 감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할리우드의 오래된 믿음의 반영물이기도 하다. 예수의 수난을 축으로 악인으로 묘사된 유대인과 로마 군인들의 면면이 지독하게 의도적으로 계산된 것임을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선악의 대립적 도식 위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의 몸을 더 한층 걸레처럼 망가트리기 위해 온갖 업그레이드된 폭력묘사를 마다하지 않는 이 영화의 감독 멜 깁슨은 우리의 가련한 육신을 저버리는 것을 통해 영적인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완고한 근본주의적 신념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보고 나면 심장까지 얼얼해지지만 이것이 중세 이후 신성화된 예수의 절대적인 이미지로 관객에게 경외감을 주려는 장엄한 장광설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지막 늑대’는 좀 특이한 코미디 영화다. 한가한 시골 파출소에 부임해 대충 살아가려는 형사와 어떻게 해서든 시골을 벗어나 폼 나는 경찰이 되고 싶어하는 순경을 축으로 너무 범죄가 일어나지 않아 폐쇄 위기에 몰린 파출소를 지키려는 우여곡절을 담는다. 여기까지는 지난 해 한국에도 개봉했던 스웨덴 영화 ‘깝스’와 비슷하다. 표절 논란이 일었지만 한사코 감독이 아니라고 하니 믿어보자.

실제 영화의 초점도 다르다. ‘마지막 늑대’는 파출소를 유지하기 위해 없는 범죄도 만들어내야 하는 기이한 소동극으로 플롯을 끌고 가지만 실제로 욕심을 내는 것은 눈부신 햇살과 초록빛 녹음과 시원한 매미 소리가 끝없이 펼쳐지는 낙원으로 시골을 묘사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 영화는 도시 삶을 묘사하는 것에 피로를 느꼈는지 곧잘 시골로 내려가 거기서 순진한 삶에 대한 향수를 끌어내려 애쓴다. 그것이 이 영화가 은근히 암시하는 바대로 이 시대가 완전히 죽여버린 삶의 야생성의 중요성을 뜻하는가는 좀 별개 문제다.

‘마지막 늑대’는 뻔한 대중영화의 공식에 다른 얘기를 새기려는 한국영화의 드문 악전고투를 보여준다. 100점짜리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헉헉 대지 않는 전개 리듬이 썰렁한 유머 감각으로 상승하는 특이한 장점을 갖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영화의 기대주였던 마티유 카소비츠의 ‘고티카’는 ‘메이드 인 할리우드’가 얼마나 위력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그 흔한 사례 중 한 편이다. 데뷔작 ‘증오’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면서 떠오른 카소비츠는 두 번째 영화 ‘암살자’가 냉담한 비평을 얻은 이후 작심하고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티카’의 화면 때깔과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뛰어나지만 딱 하나 없는 것은 다른 영화와 구별되는 개성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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