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아버지, 철쭉꽃 향기 전해드릴게요"
알림

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아버지, 철쭉꽃 향기 전해드릴게요"

입력
2004.04.02 00:00
0 0

그리운 아버지 보세요.산과 들에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입니다. 집 안마당에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철쭉꽃을 감상하다 보니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지는군요. 아버지는 이 철쭉꽃을 생전에 정성스럽게 가꾸셨지요.

아버지, 하늘나라에서도 이 못난 딸 자식을 걱정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당신은 제가 직장에 다니느라 고생한다며 이런저런 집안일을 도와주었지요. 제가 집에 돌아와 부엌에 가보면 껍질을 곱게 벗긴 생강, 잘 찧은 마늘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언제인가부터 "배가 더부룩하고 가끔씩 구역질이 난다"면서 불편을 호소하셨지요. 병원에서 진찰을 해보니 위암이라는 겁니다. 위암은 초기에는 증세가 느껴지지 않다가 병세가 상당히 진척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불편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이미 연세가 80이던 당신께 위암은 이겨내기 어려운 병이 되고 말았지요.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당신은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평생을 함께 하던 어머니를 몹시 그리워하셨지요.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당신은 많이 약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당신을 특히 그리워합니다. 당신은 비가 오는 날이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정문에서 우산을 들고 손자를 기다리곤 했지요. 코흘리개이던 아이들이 이제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큰 손녀가 벌써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제 제법 재롱도 부린답니다. 둘째 손녀도 결혼을 해서 다음 달에 해산을 한답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해보니 둘째 손녀는 자연분만이 어렵고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답니다. 딸 아이의 콩팥에 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라나요. 어머니 입장에서 딸이 아이를 무사히 낳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아버지, 딸 아이가 아무 탈 없이 순산하도록 하늘에서 도와주시겠어요?

당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막내 손녀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답니다. 의류 관련 학과에 다니고 있는데 졸업하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며칠 후 당신의 산소를 찾을 생각입니다. 당신이 좋아하시던 철쭉꽃을 가져다 심어 놓겠습니다.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저희들 보살펴주고 계시지요?

/김복님·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