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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박물관 기행-남산 '지구촌 민속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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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박물관 기행-남산 '지구촌 민속 박물관'

입력
200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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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대에 박물관은 먼지에 덮혀 있었다. 박물관 관광이라고 해봐야 쓱 훑고 지나가거나 지루한 여정이기 십상이었다.하지만 과거를 되돌아보며 차분하게 삶의 좌표를 다시 모색해야할 때 박물관은 친구마냥 친근하고 다정하게 얘기를 건네온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최근 박물관 건립 붐이 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내 곳곳에 숨은 박물관들을 찾아보며, 그것을 일군 이들의 열정을 살펴본다. / 편집자주

1980년대 말 해발 3,890m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라 불리는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에서 한 한국인이 배를 타고 가다 눈이 확 뜨였다. 몇 백년은 족히 돼 보이는 도자기 유물 같은 것이 수심 2~3m 호수 밑바닥에서 어른거렸던 것. ‘왠 거냐’ 싶어 옷도 벗지 않은 채 물 속에 곧장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물의 배설물이 굳어서 뭉쳐진 것이었다.

민속 유물이라면 눈이 뒤집힌 사람, 박희문(67)씨. 그가 1997년 남산의 서울타워 지하 1층에 문을 연 지구촌 민속박물관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전 세계로 통하는 문과 같은 곳이다. 그 문을 열면 또 수백, 수천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세계 각국이 보존해온 문화와 풍습 속으로 빠져든다. 민속문화의 타임머신이다.

350평 규모로 다소 작아 보이지만 소장 유물은 무려 2만여점. 하지만 전시공간이 좁다보니 이중 2,000여점 정도만 보여주는데 박 관장은 소장 유물을 다 보여주지 못해 늘 안달이다. 아프리카 피그미족의 의자에서부터 유럽 중세시대의 정조대, 티베트의 인골바가지 등 박물관에서는 5대양 6대주, 150여개국에 이르는 무궁무진한 민속유물품의 세상이 펼쳐진다.

이 유물은, KBS 도전지구탐험대 참여자나 각국 대사들이 기증한 것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박 관장이 30여년 동안 전세계를 발로 누비며 모은 것이다. 그가 방문한 나라만 해도 110개국. 30여년전 국제민속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 “우리 문화를 알기 위해서 다른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그저 우리의 옛 문물을 모아두는 곳으로만 여겼죠. 그런데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프랑스 인간학 박물관을 보면서 정말 선진문화 대열에 합류하려면 세계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박 관장은 일찍부터 세계화 시대를 살아온 셈이었다.

그는 사업으로 돈을 벌면 곧장 해외로 돌며 유물을 사서 모았다. 한번은 80년대 중반 몽골 방문 때의 일이었다. 몽골 원주민 집에서 마음에 드는 항아리를 발견, 상당한 금액을 제시했는데도 주인이 팔 생각이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한번 마음에 둔 물건은 포기하지 못하는 성미인 박 관장은 3일 동안 그를 계속 설득해 물건을 얻는데까진 성공했다. 물론 가격은 엄청나게 솟구치긴 했지만. 그런데 어이없게도 운송 도중 깨져버리고 말았다. “힘들게 구입했는데, 마치 내 손가락이 잘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 이집트에서 수집한 칼 종류의 유물을 가지고 오다 통관 과정에서 압수당해 며칠을 항의한 끝에 되돌려 받기도 하는 등 수집과정에서 힘든 일도 많았다. 박 관장은 “천성과 집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며 “우리가 ‘우리 것만 좋다’고 내세우는 폐쇄적인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도 소중히 보존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각국의 민속품 외에도 김구, 손병희 등 애국지사의 지팡이를 모은 전시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일생을 모형 인형으로 재현한 넬슨 만델라 일대기관 등도 갖고 있다.

박 관장의 희망은 박물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내에 ‘세계 민속촌’을 건립하는 것. 세계 각국의 민속 예능인과 민속문화를 한 자리에서 모아, 말 그대로 지구촌의 민속촌을 만들어서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축제의 공간으로 삼자는 것이다. 물론 혼자로는 할 수 없는 일. 박 관장은 “정부가 용산 미군기지 부지에 세계 민속촌을 건립하면 서울이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중무휴 개관한다.

◇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2,500원, 어린이 2,000원.

◇ 남산 서울타워까지 가는 일반 대중버스가 없는 대신 30분마다 운행하는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면 된다. 4호선 명동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은 뒤 남산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도 있다.

◇ 문의 : 773-9590~1. www.jigoochonmuseum.org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소장품 엿보기

지구촌 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중 세계 각국의 흥미로운 풍속과 문화를 볼 수 있는 유물 몇 점을 소개한다.

※ 정조대

중세 유럽 유행했던 여성의 정조대. 여성의 음부를 가리는 자물쇠가 달린 T자형 금속제 벨트인데, ‘비너스대’로도 불렸다. 이 유물은 12세기 체코에서 철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정조대가 나타난 것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후반까지 계속된 십자군 전쟁때. 전쟁에 나가는 남자들이 아내에게 정조대를 착용케 하고 원정을 떠나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정조대도 신분격차가 있어 금이나 은으로 만들거나 안쪽에 벨벳 같은 부드러운 융단을 사용하기도 했다.

※ 인골로 만든 바가지

사람 머리 뼈의 윗부분을 잘라서 만든 바가지로 19세기 티베트에서 사용된 것이다. 티베트에는 머리뼈를 밥그릇으로 사용하는 풍습이 내려왔는데, 이는 불교의 영향 때문이었다. 티베트 불교 용품에는 인골 바가지 뿐 아니라 인골로 장식한 모자나, 사람 피부로 만든 경전까지 있다. 이는 영혼이 빠져 나간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 청자호자형 소변기

3세기 중국 동진에서 사용하던 호랑이 모양의 아동용 소변기다. 호랑이가 꿇어 앉아 입을 벌린 형태를 간략화한 것인데 가운데 손잡이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에서 유행한 동물형기(動物形器)가 전해진 것으로 원시적인 청자라 할 수 있다.

※ 축구화 모양의 목관

아프리카 가나에서 사용된 목관. 가나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직업을 형상화한 목관을 사용하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다. 축구화 모양인 것은 그가 생전에 축구선수였기 때문이다.

※ 피그미족 의자

19세기 중앙아프리카 피그미족이 사용하던 의자. 피그미족은 키가 90~120㎝에 불과한 소인족이다. 피그미(pygmy)라는 이름은 '1척의 키'라는 뜻의 그리스어 파이메(pyme)에서 유래한다. 의자의 높이는 35㎝에 불과하다.

※ 여우이빨 하체가리개

여러 개의 여우 이빨로 만든 여성용 하체 가리개로 14세기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됐던 것이다. 40㎝ 정도 되는 길이의 천 위에 여우이빨을 2줄로 촘촘히 연결해 장식품으로 붙여놓았다. 사냥을 통해 얻은 여우이빨을 통해 부를 과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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