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차 교육과정이 처음 적용돼 선택형으로 실시되는 올해 수능은 어떤 양상으로 치러질까. 성적표에 원점수 표시가 없고 표준점수가 전면 도입되는 것이 가장 큰 변수다. 똑같이 문제를 다 맞혔더라도 선택과목별로 큰 차이가 날 수 있는 표준점수의 마술은 수험생들은 물론 대학당국에 큰 부담이다. 수능의 틀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데다 새로운 변수까지 등장해 대학 진학과 지도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는 상황이다. 학교공부와 과외에 시달리는데 EBS 방송강의까지 들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는 수험생들도 많다. 이번 수능을 '묻지마수능', '로또수능'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험 직후 교육과정평가원이 제공하던 가채점 통계도 올해부터 나오지 않는다니 진학정보를 얻기는 더 어렵게 됐다.수능 출제에는 EBS의 강의내용을 반드시 반영하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기출문제라도 다시 내겠다고 한다. 두 가지 모두 옳은 선택이라고 본다. EBS 강의내용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방송강의의 의미가 없게 된다. 지금까지 기출문제를 기피했던 것도 우스운 일이다. 기출문제를 배제하다 보니 좋은 문제를 만들기 어렵고 말썽도 생기곤 했다. 다만 똑 같으면 안 되므로 변형과 응용을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가 학생부 성적의 반영률을 낮춰 사실상 수능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1997년 이래 공교육 강화차원에서 펴온 학생부 중심의 교육정책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학의 입장에서는 변별력 확보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변수가 많은 이번 입시에서는 대학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새로운 수능을 입시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의 해결책임은 사실상 대학에 부여된 상황이다. 그런데 고교마다 경쟁적으로 부풀리기를 하고 있어 내신은 불신받게 된 지 오래며 신입생 전형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 변별력이 없다. 학생부의 학생평가를 보면 성실하고 우수하지 않은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극찬 일색이다.
우스운 것은 이런 논란과 난리를 치르며 실시되는 새 수능제도가 겨우 3년밖에 지속되지 않는 점이다. 지금 중3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8학년도에는 수능이 사실상 폐지될 전망이다. 교육혁신위원회가 마련한 초안의 핵심은 전국 단위의 일률적 시험에 따른 점수 없이 학습과정과 교육내용을 평가·기록한 교육이력철을 활용해 학생들을 뽑는 것이다. 무시험 대입전형이라 할 수 있는 새 제도는 8월말이면 도입 여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벌써부터 고1의 부모들은 대입제도가 바뀌니 재수하면 불리하다, 지금부터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자녀들을 닦달하고 있다.
대입제도를 3년 만에 바꿔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입제도는 사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5공 때인 전두환 정권이 세계적 교육개혁 추세에 발 맞춘다며 교육개혁심의회를 가동한 이래 역대 정부는 중앙교육심의회 교육개혁위원회 새교육공동체위원회에 이어 지금의 교육혁신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약간 다른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를 운영했다. 이들 위원회는 대입문제가 교육개혁의 핵심인 양 제도를 바꿔 왔다. 그런데 그 여러 이름의 위원회가 만든 개혁안과 추진한 제도가 과연 개혁이며 개선이라거나 일관성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개헌을 하지 않는 한 대통령의 임기는 5년제가 지속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추세라면 정권이 바뀌자마자 새 위원회가 구성돼 새로운 개혁안을 만들고, 따라서 2013년에는 대입제도가 또 바뀔 것이다. 올해의 시한부 로또수능은 교육개혁과 대입제도의 일관성 계속성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임 철 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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