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일본에서 탁발을 하며 후지(富士)산 기슭에서 정신장애자들과 함께 살아 왔습니다. 장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이왕 고생하려면 고국에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충고로 귀국을 결심했지요."일본에서 탁발승이자 목사로 활동하면서 '운수(雲水) 목사'란 별명을 얻은 이철(李哲·82)씨가 일시 귀국했다. 개척교회와 정신장애자 보호시설을 겸하게 될 새 보금자리를 휴전선 가까운 곳에 마련하기 위해서다. 돌보고 있는 일본 정신장애자 3명도 함께 데려 올 예정이다. 52∼57세의 그들도 그에게는 여전히 '애들'이다.
함북 성진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식민지 시절 도쿄(東京)의 전문학교에 유학한 후 한때 서울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1969년 47세에 출가했다. 통도사에서 경봉(鏡峰) 스님을 은사로 늦깎이 승려가 된 그는 7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에서 종교사회학 석사과정, 고마자와(駒澤)대에서 비교종교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당시 교도소와 장애인 시설을 돌며 포교를 하던 그는 "보세요, 꽃이 웃고 있잖아요"라며 손을 잡아 끄는 정신장애자를 보고 그들의 티없는 마음에 매료됐다. 시즈오카(靜岡)현 후지노미야(富士宮)시의 후지산 기슭에 홍원사(弘願寺)를 짓고, 장애와 가난의 이중고에 시달리던 정신장애자를 받아 들여 '제2 본존'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것이 그의 구도행의 끝은 아니었다. 어느날 '두 눈을 갖추라'는 계시를 받은 그는 89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 장로회 신학대를 다녔고, 91년 가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홍원사에 '백두산 성령교회'란 간판을 하나 더 걸었다. 지금도 참선과 기도를 병행하고 있지만 '비빔밥'이라는 지적에는 "참선과 명상은 모든 종교의 바탕이며 구미에도 참선 수행을 하는 목사, 스님의 제자가 된 신부 등 유명한 분들이 많다"며 펄쩍 뛰었다.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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