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행정권과 입법권의 분리를 내세워 거부해왔던 콘돌리사 라이스(사진) 국가안보보좌관의 9·11 진상조사 청문회 공개 증언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백악관측이 30일 밝혔다.부시 대통령은 또 9·11 진상조사 위원 10명 전원과 기록을 맡을 조사위의 서기가 참석하는 청문회에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출석, 증인 선서 없이 비공개 증언하는 데 동의했다.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은 지금까지 조사위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질의에만 답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백악관의 결정은 부시 정부가 9·11 이전 알 카에다의 위협을 긴급한 현안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의 증언 이후 부시 정부의 9·11 테러 대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조사가 예외적인 점을 감안, 라이스의 공개 증언을 허용키로 했다"며 "우리는 9·11의 손실과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앞서 백악관의 알베르토 곤살레스 법률고문은 9·11 조사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라이스 보좌관의 공개 증언을 행정과 입법의 분리 원칙을 깨는 선례를 만들지 않으며 조사위가 백악관 직원들의 추가 공개 증언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문서로 보장한다는 조건아래 수락한다고 밝혔다.
라이스 보좌관은 2월7일 증인선서 없이 비공개 증언했으나 위원회측은 클라크 증언 이후 두 사람 주장의 차이점을 규명하기 위해 그의 공개 증언을 들어야 한다고 압력을 높여왔다.
부시 정부의 입장 변화는 클라크 증언 이후 안보 이슈에서의 방어적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특히 라이스 보좌관의 공개 증언 거부가 9·11 테러 대책 실패에 대한 정보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낳아 대선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서둘러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라이스의 공개 증언이 대통령이 보좌관들의 자유롭고 내밀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백악관이 대통령 권한 침해라는 원칙의 벽을 스스로 허물면서 양보를 선택한 것은 클라크 증언이 부시의 가장 소중한 선거 자산인 안보 대통령의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미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부시의 선거 참모들이 공개 증언을 계속 거부했을 경우의 정치적 부담이 원칙에서 유연한 입장을 가질 경우의 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판단에 따라 타협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부시 선거 운동을 총지휘하는 칼 로브 백악관 정치담당 고문은 선거전의 이슈를 정보력 부재에 대한 의문에서 어느 후보가 미래의 테러 공격을 더 잘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란으로 전환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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