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밖에 나가 있다가 돌아와 책상 한 귀퉁이에 쌓여있는 우편물들을 차례차례 열어보았다. 그 우편물에 '편지'라는 항목이 빠진 지는 이미 오래다. 편지 봉투에 넣어 보내와도 그것들 대부분이 한두 장짜리 공적인 인쇄물이다.그 중 하나가 쉽게 열리지 않아 그동안 책상서랍 속에 넣어두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던 '편지칼'을 꺼내 봉투를 열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빙긋 웃고 말았다. 봉투 모서리에 '편지칼'을 밀어넣다가 그야말로 한순간 어떤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서 였다.
어린시절 시골 초등학교에 우리 반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편지가 오면 꼭 편지칼로 봉투를 열던, 도시에서 온 처녀 선생님이 있었다. 그때는 사과나무에 약도 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그 선생님은 예쁜 주머니칼로 아이들이 주는 자두까지 꼭 깎아먹었다.
동네 어머니들이나 고모, 누나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것은 깎은 사과, 깎지 않은 사과만큼의 거리가 아니라 그 시절 호미와 편지칼 만큼의 거리였던 것이다. 그때 그 모습을 보며 어린 것이 발칙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이 다음 어른이 되면 나도 저런 색시와 한번 살아봐야겠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