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들뢰즈의 세기가 올 것이다."푸코가 프랑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사진 왼쪽)의 1968년 국가박사학위논문 '차이와 반복'에 대해 쓴 서평의 한 구절이다. 90년대 중·후반 '안티 오이디푸스'등으로 일어난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1930∼1992) 열풍이 사라진 이후에도 들뢰즈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들뢰즈의 전반기 역작으로 꼽히는 '차이와 반복'을 비롯,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1988), '프루스트와 기호들' (1964) 세 권의 저서가 한꺼번에 선을 보였다. 이로서 주요 역작이 거의 모두 번역된 셈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들뢰즈의 세기'라는 예언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푸코가 '안티 파시스트적 삶의 안내서'라고 평가한 '안티 오이디푸스'(1972)와 '천의 고원'(1980) 등 가타리와의 공저는 '탈주' 등 급진적인 개념으로 한국 지성계에 파장을 미쳤으며 최근 번역 작업은 들뢰즈의 본격적인 철학 저작에 도전했다.
'차이와 반복'(김상환 옮김·민음사)은 가타리와 만나기 전 작품으로 들뢰즈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꼽힌다. 들뢰즈는 플라톤에서 칸트·헤겔로 이어지는 서양 형이상학의 전통에 맞서 니체와 스피노자 등 '이단아' 스승들로부터 전수 받은 '초월적 경험론'으로 대결한다. '지성의 지휘 아래 복무하는 감성의 세계'라는 칸트적 자리매김은 역전되어 감성적인 것이 개념적인 것보다 우월한 자리에 올라선다.
플라톤주의로 대변되는 서양 주류사상은 코스모스 아래 카오스를 가두어 놓는 재현과 동일성의 세계였다. 반면 들뢰즈는 카오스와 부조화, 차이에서 오히려 생성과 힘을 발견하는 긍정의 세계를 제시한다.
'주름'(이찬웅 옮김·문학과지성사)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單子)'에서 틈과 불규칙을 주목하고, '노마드'를 적극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보르헤스의 소설, 17세기 바로크 건축, 불레즈의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라이프니츠를 색다르게 해석했다.
'프루스트와 기호들'(서동욱 등 옮김·민음사)은 초판을 낸 이후 10여 년 간 들뢰즈가 계속 수정작업을 한 작품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독창적인 평론이다.
마들렌 과자 맛에 고향을 떠올리게 되는 주인공처럼 이성은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비자발적·임의적으로 인식한다며 칸트의 인식론을 전복하고 있다. 7년 전 번역에 역주와 해설을 보강한 개정판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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