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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정범진 前 성균관大 총장 - 대만인 스승 성금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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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정범진 前 성균관大 총장 - 대만인 스승 성금 여사

입력
200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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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동안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깊은 인연을 맺지 못하는가 하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인연이 있다. 중문학자 정범진(丁範鎭·전 성균관대 총장·69)씨의 대학시절 중국어 강사인 성금(成錦·81) 여사가 그런 후자에 속한다. 정 전 총장은 성금 여사를 대학 시절에 잠깐 만났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는 성금 여사를 만난 것을 계기로 평생 중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그는 1956년 명문 성균관대에 입학했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2지망으로 중문학과에 합격한 터였다. 영문학을 전공해 세계적인 영문학자가 될 꿈을 갖고 있던 그에게 중문학은 낯선 학문이었다. 아니 피하고 싶은 학문이었다. "친구들 사이에 중문학은 고루하고 골치 아픈 학문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었습니다. 반면 영문학은 무언가 세련되고 출세길이 보장된 것처럼 여겨졌지요."

재수를 해야 할까. 한자 투성이의 중국어 교재를 구입해 펼쳐 보니 그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이런 갈등을 겪는 사이에 1학기가 훌쩍 지나갔고 몇몇 친구들은 휴학계를 내고 재수 공부를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2학기를 맞이했다. 이때 그가 마주친 인물이 중국어 강사인 성금 여사였다. 그녀는 단아한 풍모에 중국인 전통 복장을 하고 있어 금방 눈에 띄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대만 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 보세요."

성금 여사의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성금 여사는 강의만 하고 끝내는 강사가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그녀는 무척이나 성실히 가르쳤다. 대만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했다는 그녀의 발음은 매우 정확했다. "성금 여사는 한국말을 못한다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말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못하는 척 했던 것 같아요."

그녀는 대만 대사관에서 신문을 가져다 보여 주기도 하고 학생들 하나하나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그녀는 단순한 강사의 역할을 넘어서 중국을 알리는 문화 사절이었다. 학생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듣도 보도 못했던 진기한 중국 과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금 여사가 정씨를 강사실로 불렀다. 성금 여사는 정씨의 작문 과제물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정군의 작문 과제물을 대만의 유명 대학에 보내 평가를 받게 했는데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정군은 중문학에 매진하면 크게 성공할 거예요."

이 일을 계기로 정씨는 영문학에 대한 미련을 접고 중문학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중문학과 입학 동기가 23명이었는데, 졸업은 단지 3명만이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정씨였고, 그렇게 만든 인물이 성금 여사였던 것이다.

그는 국립대만사범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성균관대 강단에 섰고 한국중국학회장, 중국문학연구회장을 맡았다. 그는 당나라 소설 연구의 일인자로 꼽힌다. "13억 인구의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중국어의 인기가 높아졌지요. 내가 다니던 시절에 중문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성균관대, 서울대, 한국외국어대 3곳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100곳이 넘습니다. 격세지감이지요."

성금 여사는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각국을 다니다 현재는 대만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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