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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호 기적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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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호 기적 멈춘다

입력
200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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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7시23분 청량리역. 1502호 통일호 통근열차가 역사 안으로 들어선다. 오전 5시20분 춘천을 출발해 역무원 하나 없는 간이역까지 18개역을 꼬박꼬박 들르며 92.3㎞를 내달아 오는 길.북한강 길 새벽 안개며 이슬에 젖은 모습이 진땀인 듯 보인다. 다행이랄까. 31일이면 이 노역도 끝난다. 1일 고속철도 개통으로 49년간 5억명의 승객을 실어 나른 통일호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경춘선 완행의 꽃은 단연 MT열차였다. 통일호의 마지막 금요일이었던 26일에도 MT대학생들로 만원이었다. 432개 좌석은 물론이고 입석(512장)까지 모두 매진. 발매기는 더 토해낼 표가 없다는 듯 입을 다문 지 오래지만 찾아온 사람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는 없는 일. 그게 삼등 완행열차만의 매력이자 경쟁력 아니던가. 춘천행 1511호 통일호 열차는 객차 6량에 이렇게 1,000명을 넘게 태운 뒤에야 오후 1시50분 발차했고, 통로를 빼앗긴 홍익회 아저씨는 장사를 포기해야 했다.

정원 초과로 밭은 숨을 토하고 있는 차령 24년(규정연한 25년)의 객차도 조만간 고철로 팔려 마지막 애국을 하거나 경치 좋은 자리에 놓여 카페로 늙어갈 것이다.

통일호가 열차 이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55년이다. 1899년과 1906년 각각 개통된 경인선과 경부선의 열차가 시속 20∼40㎞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인 1936년 시속 60㎞의 특급열차로 도입된 히카리(光·부산-만주)호가 해방 이후 조선해방자호로 개명됐다가 새로 얻은 이름이 통일호. 그 시절 통일호는 완행―보통급행―급행의 열차 계급 위에 군림하던 초특급이었다.

이후 최신식 열차들이 속속 등장했고 84년 철도청의 열차명 개명과 함께 새마을―무궁화에 이어 보통열차로 내려섰다가 2000년 완행인 비둘기호가 퇴역한 뒤 꼴찌등급으로 강등됐다.

전국 65개 노선, 636개 역을 누벼 온 그 통일호는 고속철도 등장과 함께 퇴출되고 몇몇 동차(자가동력열차)만 수도권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경의선 등 일부 노선에 투입된다.

통일호 퇴역이 가장 안타까운 것은 통근객과 통학생들. 청량리―강촌 편도요금은 통일호가 2,200원이지만 앞으로는 4,200원을 내고 무궁화호를 타야 한다.

또 MT열차의 시대는 어쩌면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중앙대생 김인선(정외2)씨는 "45인승 관광버스 빌리면 학교에서 민박집까지 편하게 와도 편도 20만원이어서 무궁화호를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년(57세)이 코앞인 통일호 기관사 정기림(55)씨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이다. "북한강 끼고 가는 경춘선과 남한강 따라가는 중앙선에 배속돼 30년 세월을 소풍 가는 기분으로 일했어요." 31일 그는 그렇게 마지막 통일호 소풍을 떠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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