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이 극심한 피로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동맹의 기초가 되는 공동위협 인식에 한미 간 차이가 가시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동맹에 대한 사회적 지지 기반 또한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주한 미군 기지 이전 문제가 또 다른 쟁점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미 2사단 후방 배치 건은 미국 측이 요청한 사안으로 대부분의 이전 경비를 미측이 부담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용산 기지 이전 문제는 이미 쟁점화되고 있다. 일부 시민 단체는 용산 기지 이전이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에 따른 재배치의 일환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전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1990년 체결한 한미 양해각서에 명시되어 있는 한국 측의 이전비용 전액 부담 조항은 미국의 압력에 의한 불평등 합의이기 때문에 전면 무효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원래 용산 기지 이전 건은 87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대통령이 5·18 광주항쟁의 부작용을 상쇄하기 위해 민족 자존 외교라는 명분 하에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그 후 88년 프랭크 갈루치 미 국방장관 방한시 한국 정부가 이를 미측에 공식 제기했고, 미측 역시 흔쾌히 받아들여 90년 양국 국방장관 간에 합의의정서를 체결하면서 구체화되었던 사안이다.
그리고 그 이행이 지연된 것도 다분히 우리 측 사정 때문이었다. 당시 100억 달러로 추정되던 이전비용은 반환된 용산 부지를 팔아 충당하려 했지만 현행법상 용이하지 않았다. 게다가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한미 양측이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따라서 용산 기지 이전에 대한 원인 제공은 기본적으로 한국 측에 있다 하겠다.
더구나 동맹국 간에 기지 이전을 할 경우 일반적으로 이전을 요청하는 측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따라서 90년 합의의 일방적 파기나 수정은 국제관례에 어긋날 뿐 아니라 동맹 간의 신뢰를 크게 해칠 수 있다.
만일 90년 합의를 무효화할 경우 두 가지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용산 기지 잔류이다. 그러나 이는 수용하기 어렵다. 외국군 기지가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기지 이전에 따른 용산 지역의 공원화와 서울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혜택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을 고려할 때 3조∼4조원의 이전비용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용산 기지 국외 철수와 주한 미군사령부 해체다. 우리 측이 이전비용도 부담할 수 없고 기지 잔류도 허락할 수 없다면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곧 한미연합사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전협정 체제는 물론, 한미동맹의 와해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가능성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한 군사 대치, 중국의 패권적 부상, 그리고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 등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아직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전비용과 관련된 세부 항목에 있어서는 다부지게 대미 협상을 하되 이 기본명제에서 벗어나는 일은 가급적 자제해야 할 것이다.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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