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우리나라 선거는 모범답안을 가장한, 절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 판을 주도해왔다. 어떤 유권자도 자신은 절대 지역감정을 가지고 선거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모든 설문조사에서 그들은 자신의 표심이 아니라 바른생활 시험의 정답을 말해왔던 것이다.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그 반대로 나타났다. 만약 "당신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다면 "지역감정대로 투표할 것이다"라는 대답이 80% 이상 나왔을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그 부분의 영향력은 예전보다 확연히 줄어들 것 같다. 인터넷에서도 게시판을 통한 지역감정 싸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이것만큼 보기 싫게 지긋지긋했던 싸움도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난 2002년 대선만큼 인터넷이 위력을 발휘한 선거도 없었다. 인물로는 노무현과 이회창의 싸움이었지만, 실제로는 인터넷과 몇몇 종이신문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몇몇 종이신문의 연합을 골리앗으로, 인터넷을 다윗으로 비교했지만 이것 역시 실제로는 종이신문이 선풍기 정도였다면 인터넷은 한반도 전체를 강타해버리는 태풍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이번 17대 국회의원 선거 역시 인터넷의 흐름을 잘 살피면 그대로 판세가 보인다. 부산이고 광주고 일껏 내려가서는 고작 한다는 것이 택시기사한테 주워들은 몇 마디의 말과 시내 호프집과 대학가 주변에서 받아 적어온 몇 마디의 말을 짜깁기해 마치 그것이 그 지역 여론의 전부인 양 떠드는 신문의 판세분석보다 수많은 네티즌들의 의견이 거대한 해류를 이루고 있는 인터넷의 판세분석이 더 정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선거는 전국 243개 지역마다 한 개씩의 당선 고지를 놓고 싸우는 각 당 후보들간의 개인전투로 치러지지만 인터넷에서 지지자간에 치러지는 전투는 243개의 전장에서 치러지는 부분 전투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해류와 해류가 바다 전체를 놓고 세력싸움을 하듯 거대한 흐름으로 전선을 형성한다. 각 정당과 후보자 홈페이지 방문자 숫자의 싸움이 아니라(여기는 그야말로 관계자들만 출입하는 곳이고) 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총선 여론 사이트에서 저마다 세를 불리며 해류를 이루고 지지와 공격, 방어의 논리로 끊임없는 충돌을 벌이는 것이다.
네티즌들에게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결과를 짐작하기 쉽게 치러지는 선거처럼 보이는 것 같다. 결과를 짐작하기 쉽다는 것은 어느 정당 지지자든 지금 판세대로라면 1당, 2당, 3당의 순서를 짐작하기 쉽다는 것이고, 또 1당이 과반 의석을 훨씬 넘게 차지하리라는 걸 짐작하기 쉽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런 부분에 대해 늘 조심스러워 그런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처음부터 박빙의 판세가 아니라 알기 쉬운 판세였다면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유권자들한테 '탄핵의 기억'을 지울 만큼 아주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 판세는 마지막까지 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신문과 인터넷의 차이라면 신문과 방송을 포함한 제도권의 여론 주도층은 이제까지 선거 때마다 모범답안으로 강조해온 '각 당의 정책과 인물을 비교해 선택하기'를 이번에도 금과옥조처럼 강조하고 나서는 모양이지만 인터넷의 여당 지지들은 오히려 그 점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까지도 인물이 부족해 차떼기를 한 것이 아니고, 애초 내세웠던 정책이 부족해 국민 절대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대통령 탄핵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연 지금 인물을 보고 국회의원을 뽑는다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 실정에 맞는지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어떤 인물을 뽑든 당의 결정에 따라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는 걸 이번 탄핵으로 너무 뼈저리게 알아버린 것이다.
그것은 이번 선거로 원내 진입을 이룰 민노당의 경우 어떤 인물들이 들어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몇 석을 차지하며 들어올 것인가가 보다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인 것이다. 예전 선거에서는 당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곧 지역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었지만 그 결과 '쪽수'를 바탕으로 한 탄핵까지도 경험한 지금이야 말로 정당지지 투표여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고 그 주장이 인터넷에서는 강력한 힘을 얻고 있다.
남은 선거날 까지 인터넷에서의 싸움 역시 그것이 될 것 같다. 야당의 후보들과 지지자들은 한 목소리로 정책과 인물, 곧 출몰할 거대한 여당에 견제의 논리를 펴나갈 것이고 여당의 여론 주도층은 전국을 한 선거구로 하여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탄핵 역풍 여론을 보름 후까지 그대로 끌고 가는 것에 온 초점을 맞출 것이다.
박근혜 씨가 당대표가 된 후 TK 여론이 많은 부분 '미워도 다시 한번'의 향수로 돌아섰다 해도 아직 인터넷의 바다는 탄핵 역풍의 바다이고 촛불의 바다인 것이다.
●소설가 이순원씨는…
이순원씨는 1957년 강릉에서 출생해 강원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 '낮달'이 당선돼 등단했다. 소설집 '그 여름의 꽃게' '얼굴'과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미혼에게 바친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등이 있으며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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