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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당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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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당의 실패

입력
200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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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세기적 실험으로 탄생한 독일 바이마르 헌법은 1933년 히틀러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수권법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종말을 고하였다. 바이마르 헌법의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은 다양하다. 정부 형태에 대한 명확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이원정부제였지만 제도적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에 이르기까지 그때그때 정치적 상황에 따라 실제 어떠한 정부 형태로 운영될지 불안정하였다. 행정부에 대한 불신임 이후 새로운 행정부가 구성되지 못하여 국정의 공백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었다.바이마르 헌법의 실패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원인이 있었다. 당시 독일 사회에 민주주의가 기능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배적인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군주전제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평등사회와 계급사회의 이념이 극단적으로 대립하였고, 또 어느 한 극단에도 동질성과 연대성을 가질 수 없었던 무수한 세력이 파편적으로 대립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의회, 그리고 의회에 진출한 정당들은 의사결정 능력을 가질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아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으며, 소극적으로 보면 의회민주주의의 적에 대해 아무런 저항을 할 수도 없었다. 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의식과 문화를 기준으로 보면 민주주의가 너무 빨리 온 것이다. 미숙아였던 민주주의는 외부적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1987년 헌법은 우리 헌법사에서 유례 없이 오래 존속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탄핵 사태를 전후하여 우리 정당들의 모습을 보면 민주주의는 아직 아득해 보인다.

헌법, 그리고 정당법에 의하면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다. 우리 헌법은 1962년 이래 정당을 승인하고 세계 헌법사에서 유례가 없이 정당 운영 자금에 대한 보조 규정을 두고 있다. 그만큼 사적 단체인 정당에 대해 강력한 공적 기능이 기대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헌법적 제도의 발전과 정착에도 불구하고 정당은 헌법의 규범적 요청을 계속 일탈하여 왔다. 그러한 실망은 이번 탄핵 사태에서 정점에 달했다. 정당 지도부의 지도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목전의 선거전략적 차원에서 즐기듯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놀이했다. 위기 극복과 눈앞의 생사를 건 목표 달성에 대한 강박관념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정당의 존재를 매몰시켰다. 정당은 국민의 의사와는 완전히 유리되어 전략적 동기에 의하여 자가발전하는 단체로 전락하였다. 여기까지만을 보면 의식이 제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바이마르 헌법의 경험을 연상하게 된다.

헌정사에서 반복되어 왔듯이 제도권의 실패를 구원하는 것은 국민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국민의 분노는 외형적으로 보면 정당의 정체성을 재정비할 기회를 준 듯이 보인다. 탄핵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총선이 실시되고, 그 결과 지극히 불균형한 국회 구도가 나타난다면 이 또한 민주주의 실현에 유리한 여건은 아니다. 정당의 재정비는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안도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눈앞에 닥친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받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아득하다. 정당은 국민이 정당에 일체성를 갖도록 자기 발전과 정체성을 확고히 유지하고, 국민의 의사를 끊임없이 투입하여 안정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정권의 변화, 그리고 선거의 성공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정책과 이념이 존속하는 그러한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1962년 헌법 이후 너무 오래 기다리고 기대했던 40년을 이제 우리 정당들은 보상하여야 한다.

전 광 석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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