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만 있고 경쟁력은 없다.' 우리 대학 입시에 대해 이런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거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처절하다.아무리 해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끝이 없는 경쟁이다. 그래서 과외비 규모는 점점 커지고, 급기야는 멀쩡한 집안의 어머니들이 파출부로라도 나서서 과외비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땅에서 쏟아 부어야 하는 끝없는 사교육비 규모에 질려 아예 기러기 아빠로 혼자 남는 쪽을 택하는 가정도 많다.
최근에 교육부가 내놓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보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명감과 취지가 절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런데 문제 해결은 취지나 사명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교육비를 줄여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철저하게 인센티브 제도로 나가야 한다. 교육부가 믿을 만한 정책을 내놓고, 그 정책에 호응해서 따라오는 수험생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주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가 준비보다 의욕만 앞선 나머지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교육부를 믿고 따라가는 순진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또 다시 상처를 남겨주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교육부 믿고 TV로만 수능 준비를 했더니 대학 입시를 망쳤다는 소리가 나와서는 곤란하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면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EBS 수능 방송과 전국 단위 인터넷 방송으로 수능 준비를 하도록 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새로운 형태의 방송을 하려면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시험 방송이 필요한데 과연 3개월 시험 방송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인터넷 강의를 두고 '불안한 개강'이라고도 하고 '전시 행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지금 아무 정책도 없이 손 놓고 앉아 있기에는 사교육비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 무엇인가 시도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예상치 못한 문제와 잡음이 나올 수는 있다고 본다.
교육부가 인터넷 방송을 3개월 동안 시험 운영하기로 한 결정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각종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험 기간을 두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지역 고교생들에게 위성방송수신기를 지원하고 인터넷 시스템을 증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하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험 운영 기간에 접속 불능, 시스템 다운 등 지방 학생들의 불이익 문제가 심각해지면 과감하게 인터넷 강의 시스템을 일시 중단한 뒤 보완해 나갈 필요도 있다.
정책을 내놓을 때 행동보다 말이 앞서서는 곤란하다. 모든 정책 결정에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짚어야 할 것을 미리 짚어가며 심사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혹시'하며 기대를 갖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또 '역시나' 하며 실망하지 않도록 교육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 수능 방송이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
교육부는 약속이 앞선 정책을 내놓지 않도록 대책을 정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발전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 비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계 1위를 달린다는 사교육비 문제는 그리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여론의 비난이 무서워 복지부동하며 아무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
강 미 은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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