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위피(WIPI)냐, 미국의 브루(Brew)냐.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밀접한 유대관계를 자랑해온 두 나라가 휴대폰용 무선인터넷 소프트웨어 표준을 놓고 2년 가까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처음에는 미국 퀄컴과 한국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KWISF)간의 갈등에 불과했던 문제가 이제는 양국간 양보할 수 없는 통상 이슈로 확대됐다. 그새 한국이 이동통신의 세계적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휴대폰 무선인터넷이 황금알을 낳는 첨단 산업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위피와 브루, '엇갈린 운명'
위피와 브루는 휴대폰에서 게임과 웹브라우저 등 다양한 무선인터넷 프로그램이 돌아가도록 해주는 기본 소프트웨어다. PC로 치면 윈도나 리눅스 같은 운영체제(OS)와 비슷하다.
엄밀히 따지면 응용프로그램과 운영체제 중간쯤에 해당되므로 '미들웨어'로 분류하며, '무선인터넷 플랫폼' 혹은 '모바일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위피는 2001년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3사가 각각 다른 모바일 플랫폼을 하나로 합쳐 휴대폰 사용과 개발을 더 편리하게 하자는 취지로 태어났다.
플랫폼이 동일하면 똑같은 프로그램을 3사의 서로 다른 표준에 맞춰 반복해 만들 필요가 없고, 휴대폰간 호환성도 높아져 비용과 가격이 크게 절감된다. 7월 KWISF에 담당 분과가 생기면서 개발이 시작됐고, 여러 시험작을 거쳐 2.0버전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브루는 이중 KTF가 사용 중인 무선인터넷 플랫폼이다. 제작자는 국내 이동통신 표준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을 개발한 미국 퀄컴사.
처음 위피가 개발에 돌입했을 때 퀄컴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SK텔레콤의 SKVM 플랫폼이나 LG텔레콤의 KVM보다 브루가 훨씬 뛰어난 기술이었고, 한국 이동통신 시장에서 퀄컴의 영향력이 막강한 만큼 결국은 브루가 '천하통일'을 할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표준 둘러싼 '파워 게임'
우리 업체들은 그러나 10여년째 계속되고 있는 퀄컴의 기술 종속에 이미 신물을 느끼고 있었다.
퀄컴의 기술을 받아들였기에 세계적인 이통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나, 단말기마다 CDMA 칩셋을 사고, 대당 5%가 넘는 로열티까지 지불하는 거래가 못마땅해진 것이다. 퀄컴의 브루를 사용하면 단말기당 3달러의 로열티를 더 얹어줘야 한다.
여기에 국내 무선인터넷 시장이 연간 2조원 규모로 급성장하면서 일본·미국 등과 더불어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각되자 '독자적인 국산 플랫폼을 만들어 확산시키면 국내 업체가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미 국산 휴대폰 업체들이 세계 시장의 20%를 차지한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산업적 논리에 찬동했다. 민간이 무선인터넷 플랫폼을 해외에 수출하면 막대한 기술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2003년이 되자 퀄컴은 뒤늦게 위피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폭 넓은 기술적 호환성을 갖추고 있어 브루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던 것이다. 미국의 선마이크로시스템(썬)이 단말기 1대당 240원(20센트)이라는 낮은 로열티를 받고 위피 계획에 참여하면서 브루와 위피는 대결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밀어붙이기보다 타협 택할 듯
한국이 세계 무선인터넷 시장을 주도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 정부도 위피 분쟁에 뛰어들었다.
자국 기술인 브루가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기위해 브루와 위피를 공동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국내 이통 3사가 위피를 단일·공동 표준으로 채택해 사실상 브루를 배제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이는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기술 표준 역시 시장 경제원칙에 따라 시장 자율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거들고 나선다면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불공정한 무역행위라는 경고도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그러나 민간단체인 KWISF가 위피 개발을 주도하고 있어 정부는 개입할 틈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무선인터넷 표준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상 '(통신)서비스 표준'에 해당하므로 업체들간에 단일 표준을 정하는 것 또한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이래저래 난감한 입장에 몰린 퀄컴은 지난 23일 '위피와 호환 기능을 탑재한 브루를 개발해 곧 출시하겠다'며 타협안을 들고 나왔다.
대신 이통사 각자의 판단에 따라 위피 호환 브루의 사용을 허용케 해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자존심을 접고서라도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위피 채용 단말기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퀄컴이 얼마나 '역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위피 사용하면 어떤점 좋아지나
1=휴대폰 제조사가 공동 표준을 쓰기 때문에 휴대폰 개발에 드는 비용이 줄어든다. 특히 KTF와 LG텔레콤용 제품 차이가 줄어든다. 이에 따라 휴대폰 가격도 더 싸진다.
2=휴대폰 게임 등 모바일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싸지고 더 많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똑 같은 게임이라도 SK텔레콤용, KTF용, LG텔레콤용을 따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개발하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3=이통 3사끼리 무선인터넷 소프트웨어가 모두 호환되기 때문에 KTF에서 받은 게임을 SK텔레콤용 단말기에서 실행할 수도, LG텔레콤 단말기의 게임을 KTF 단말기에 옮겨 쓸 수도 있다.
4=해외에서 위피 표준을 받아들이면 국산 위피 휴대폰과 무선인터넷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수출길도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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