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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사랑한다 말해줘·햇빛 쏟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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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사랑한다 말해줘·햇빛 쏟아지다

입력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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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표" 주인공 이제 그만요즘,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는 수목드라마 MBC '사랑한다 말해줘'(사진)와 SBS '햇빛 쏟아지다'를 보면 요즘 한국의 드라마가 변하긴 변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다루는 소재의 영역이 꽤 넓어졌기 때문이다.

'사랑한다 말해줘'에는 혼전관계나 베드신이 스스럼없이 등장하고, '햇빛쏟아지다'는 주인공 은섭(조현재)이 프랑스에서 1년간 수아(최유정)와 동거한 것으로 설정되며, 은섭은 자신의 아버지(송재호)가 연우(송혜교)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고 있다. 혼전관계, 동거, 살인까지 고루고루 등장하니 드라마는 남녀 주인공이 '첫 키스'를 하면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전한' 분들은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이 두 드라마는 세상이 아무리 막 나가도 주인공들만큼은 얼마나 착하고 건전한지 보여주는 작품들이니까. '사랑한다 말해줘'에서 거리낌없이 혼전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20여년간 함께 지내면서 키스 한 번 제대로 못한 병수(김래원)와 영채(윤소이)같은 '순수한' 남녀가 아니라, 그 둘을 떼어놓으려는 이나(염정아)와 그녀의 섹스파트너 희수(김성수)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병수는 이나의 유혹에 못이겨 그녀와 관계를 가진 뒤, 임신했다는 이나의 거짓말에 곧바로 영채와 헤어지고 이나와 결혼할 결심을 한다. 아주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서 이나의 거짓말이 밝혀지자 영채에게 돌아가려 한다. 병수에게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자신의 진심 같은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가 '책임질' 일을 하면 그 사람에게 가고, 아니면 곧바로 돌아가면 된다. 얼마나 착하고 순진한 남자인가. '햇빛 쏟아지다'에도 착한 청춘남녀가 가득 하다. 연우는 은섭의 동거사실을 알고도 은섭의 해명에 은섭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또 병수처럼 20여년간을 연우만을 사랑한 민호(류승범)는 연우의 마음을 확인한 후 그들의 사랑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은섭과 연우사이의 비밀을 알아도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 질투나 증오따윈 없다. 오직 지고지순한 사랑만이 있다. 얼마나 착한가.

그러니 건전한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두 드라마는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주인공들은 언제나 착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니까. 오히려 걱정해야 할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재미'를 찾는 평범한 시청자들이다. 세상은 그 모양인데 주인공들은 너무나 착해서 그 흔한 질투와 분노 같은 감정도 보여주지 않으니, 우리 같은 평범한 시청자들은 캐릭터의 감정에 공감할 수도, 그들의 감정이 빚어내는 갈등을 즐길 수도 없다.

그들이 서로 갈등하는 건 자신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벌어지는 우연한 사건들 때문이다. 소재는 변했지만 풀어나가는 방법은 기존의 트렌디 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다. 차라리 화끈하게 선악대결이라도 펼치면 그게 익숙하기는 하겠다. 이건 마치 SBS '천국의 계단'에 어울리는 인물들이 '발리에서 생긴 일'의 세계 속에 들어와 고생하는 것 같다. 소재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속의 '사람'들이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변했는데 주인공은 옛날 그대로 착하기만 하니, 재미도 없고 정도 가지 않는다. 그 덕에 KBS '꽃보다 아름다워'처럼 '제대로 착한' 작품이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했다는 것이 기쁘다면 기쁜 일이지만. /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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