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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내가 기념일을 잘 잊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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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내가 기념일을 잘 잊는 까닭은

입력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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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며칠이냐?"어린 시절 사나흘에 한번씩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이럴 때 "3월 30일이에요."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 얼른 달력을 보고 "이월 열흘이에요. 윤달이고요."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모든 날짜를 음력으로만 계산하셨다. 양력 2일과 7일로 아예 못을 박고 있는 강릉 장날도 음력으로 다시 날짜를 번역(?)해 드려야만 감을 잡으셨다. 그 아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들의 학교 일 말고는 집안의 제사, 시제, 생일, 곗날 등 특별한 날들을 모두 음력으로 계산했다.

그 영향으로 가장 뒤죽박죽이 된 것이 바로 나다. 일상의 모든 날들을 양력으로 계산하는 가운데 집안의 제사와 아버지 어머니의 생신, 그리고 형제들의 생일과 내 생일은 음력으로 챙기고, 내가 어른이 된 다음의 일인 결혼기념일, 다른 집에서 자라 시집을 온 아내의 생일, 아이들의 생일은 양력으로 챙긴다.

예전에 국한문 혼용세대가 있었듯 나야말로 이땅의 마지막 양음력 혼용 세대인 것이다. 아내는 그것 역시 핑계라고 말하지만 내가 남보다 집안의 기념일을 잘 잊어버리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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