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신물이 난 서울의 최 형사가 시골로 내려간다. 무릉도원이다. 권태의 즐거움을 만끽할 무렵, 마을이 너무 평화로워서 파출소가 사라진다고 한다.당황한 형사는 파출소를 사수하기 위해 '범죄있는 마을'을 만들려 노력하지만, 서울로 가고 싶은 동료 고 순경은 꿈쩍도 안 한다. 마침내 최 형사는 고 순경을 꼬드겨 사건을 만들기 시작한다. 일에 지친 서울 형사는 양동근이고, 서울로 가고 싶어 안달이 난 토박이 순경은 황정민이다.
서울 형사와 시골 순경의 갈등을 주축으로 삼고, 몇 가지 에피소드를 첨가했다. 할일 없는 고 순경은 "소도 좀 쉬어야죠"라며 밭이나 갈고, 최 형사는 낮잠이나 자며 생태계 관찰로 소일한다. 문제가 벌어진 것은 예산절감 차원에서 파출소를 폐쇄하겠다는 공문이 내려오면서부터. 고 순경은 드디어 서울로 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지만, 최 형사는 파출소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술 먹고 경운기를 몰거나, 십 원짜리 화투판을 벌인 주민들을 잡아들여 파출소 한 켠에 비닐 끈으로 피의자 대기실을 만들어 놓고 몰아넣거나 그래도 '건수' 올리기가 어렵자 우물에 독약까지 풀어넣는다. 이런 코믹한 상황을 "니가 장희빈이나. 뭔 독을 타고" 식의 궁시렁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영화는 제법 점잖으면서도 밉지 않은 코미디 영화의 틀을 갖춘다. 순박한 이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 웃음을 유발하므로써 여기서 파생되는 웃음은 제법 '무공해' 채소와 비슷하다.
걸음걸이마저 '시골스러운' 황정민의 고군분투는 박수를 보낼 만 하고, 영화 내내 늘어진 말투로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만 액션장면에서만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양동근의 연기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최 형사 마음 속 야성과 원시적 생명력의 상징인 늑대, 숲속에서 발견된 귀고리 하나가 후에 최 형사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된다는 결말은 암시를 잘 풀어낸 영화의 미덕으로 꼽을 수도 있다. 최 형사의 농간으로 탱화를 훔치러 숨어 든 3인조 문화재털이범의 연기도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하지만 상황 설정만으로 영화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우직함을 넘어 게으름으로 비친다. 영화의 절반을 최 형사와 고 순경의 소소한 갈등과 조 순경과 두미, 광수의 지지부진한 삼각관계로 밀고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나른한 설정으로 보인다.
이쯤되면 이 영화 역시 요즘 우리나라 중급 규모 예산의 영화가 빠지는 함정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요즘 영화의 공식은 이러하다. '깡패 같은 형사, 순정파 조폭 식의 아이러니한 상황 설정, 인기 있는 배우의 이미지 뒤집기, 여기에 코믹하고 인간미를 갖춘 조연 두서너명을 더해 조폭과 사투리를 양념으로 칠 것'.
이런 영화의 특성은 '두사부일체'식의 선정성과 자극성이 없어 비난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선택해야 할 명확한 미덕도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 늑대'는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안녕 유에프오' 등 일련의 착하지만 매력도 없는 영화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인디적' 상상력도 갖췄지만 그렇다고 '황산벌'처럼 전혀 새로운 웃음을 안겨주는 것도 아니다.
무던한 성격의 수더분한 성격의 여자보다 성질 사나운 미인이 더 매력적이듯, 영화도 그런 매력으로 승부를 던져야 하는 것은 오락으로서의 숙명인 듯하다. 구자홍 감독의 데뷔작. 4월 1일 개봉.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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