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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것이 문제다-英美문학 번역실태] <7>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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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것이 문제다-英美문학 번역실태] <7>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입력
2004.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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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TV나 어린이용 축약본을 통해 한 번쯤 접했을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허크라는 어린이가 모험을 통해 세상에 새롭게 눈 뜨는 과정을 기본구성으로 한다. 하지만 노예제, 기독교 문명, 백인들의 허위의식 등 당대 사회현실과 문명세계에 대한 폭 넓고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진지한 문제의식이 깃든 미국문학의 고전이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 믿고 선택할 만한 국내의 번역본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까지 번역자 미상이나 출판사 역까지 포함해 번역자 27명, 번역본은 32권이 있다. 하지만 완역본 자료를 수집한 결과, 중복 번역본을 제외하면 12명의 번역자가 낸 12개 판본에 불과했다(이 중 4개 판본이 표절본).꼼꼼하게 검토한 8개의 판본도 함량 미달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는 이미 날이 밝았었는데도 나는 태연했다. 왜냐하면 이때 나는 사람을 찾고 있지 않았으니까"(최익환 번역본). 이 문장은 "이미 날이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사람들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완전 오역은 아니더라도 문장의 정확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무슨 일을 하는데도 빈틈이 없고 진심일변도란 말이거든"(오석규 번역본). 이런 번역으로는 더글러스 과부댁이 끔찍할 정도로 엄격하고 예의범절을 따지는(dismal regular and decent) 사람이라는 작가의 비판적인 거리감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1990년대 이후 현준만 김욱동 등은 이전과는 달리 한글세대의 언어감각에 맞고 독자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단행본의 형태로 새로운 번역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준만의 번역본은 이유없이 작품 일부를 누락하거나, 텍스트에 충실하기보다 번역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과도하게 개입되어 신뢰하기 어렵다.

반면 김욱동의 번역본(민음사 발행·사진)은 작품성을 충분히 전달하고, 번역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 다만 마크 트웨인 특유의 독설이나 풍자, 아이러니 등 세심하게 고려해서 정확하게 옮겨야 할 대목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 소설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비판의 경우, 마크 트웨인은 비판의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상당 부분 내재화하고 있는 허크의 모순적인 상황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다시 나쁜 짓을 하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허크의 인식 변화에서 결정적인 장면(제31장)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여기서 '나쁜 짓'의 원어는 'wickedness'인데, 짐을 탈출시키는 행위가 기독교 교리에서는 '사악한' 행위이지만, 도덕적 정당성을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어휘라고 할 수 있다. 그냥 '나쁜 짓'으로 옮기는 것은 작가의 역설적인 전달방식에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당대 현실을 사실적으로 전하기 위해 남부 사투리나 흑인 특유의 언어가 상당히 등장한다. 내용은 물론, 작가의 공이 깃든 전달방식까지 온전하게 살리려면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상당한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모든 현대 미국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나온다"고 평가 받는 이 작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번역판이 절실하다 하겠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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