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의식, 가래를 잘 뱉지않는게 주원인결핵은 여자보다는 남자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답답한 일터에서 몸과 마음을 혹사당하는 남자가 여자보다는 전염병에 걸릴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환자들의 남녀 차는 크지 않다. 심지어 기관지결핵은 오히려 여성환자가 남자보다 4∼8배나 많이 발생하고 있다. 젊은 여성 환자들이 드물지 않게 겪게 되는 결핵 이슈 두 가지를 살펴본다.
*임신과 결핵
결핵환자는 과연 임신해도 괜찮을까. 불과 10년 전만해도 임신은 결핵을 악화시킨다고 믿어 의사는 결핵환자에게 임신을 피하라고 권유했고, 임신 중 결핵으로 진단 내려지면 낙태가 당연시됐다.
그러나 결핵 감염 경로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최근 의학계는 결핵이 임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결핵연구원 류우진 역학부장(결핵 전문의)은 "임신은 결핵의 발병, 진행, 재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다만 1차 치료에 실패하고 다시 결핵치료를 시작하는 2차 치료 환자에게는 가급적 임신을 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발된 환자가 복용하는 강력한 약제가 태아의 성장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핵균 자체가 태아에 전염될 염려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결핵균이 림프절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진다고 해도, 태반을 통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태아가 자궁 내에 있을 때 결핵균에 감염된 '선천성 결핵' 사례가 드물게 학계에 보고되고 있기는 하다.
임신 중 복용하는 결핵약은 안전할까. 1차 치료(이제까지 결핵약을 한 번도 복용하지 않아 약제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지 않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법)에 사용되는 아이나, 리팜핀, 에탐부톨은 비교적 안전한 약제로 분류돼있다.
류박사는 "이런 약제들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치료용량으론 태아 발달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1차 치료법에는 6개월과 9개월 요법 두 가지가 있는데, 6개월요법으로 단축하려면 위 3가지 약제 외에 피라지나마이드라는 약제가 추가로 포함된다.
류박사는 "세계보건기구나 유럽에선 피라지나마이드를 안전한 약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미국에선 아직까지 제한적으로 처방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스트렙토마이신이나 가나마이신 등 2차 치료에 사용되는 주사제들은 임신 중 사용을 금하고 있다.
류박사는 "결핵약 복용 중이라고 모유를 중단하고 우유로 바꿀 필요는 없다"면서 "산모들은 결핵약 복용 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다음 수유를 위해 미리 모유를 짜서 우유병에 보관한 후 결핵약을 복용한다면 약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의사들은 '출산 후'를 더 위험한 시기로 본다. 출산시 산모가 결핵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고 있다면 신생아를 따로 격리할 필요는 없지만, 불규칙하게 결핵약을 복용하거나 여전히 내성균을 배출하는 경우엔 출산하자마자 신생아를 격리시키고, 예방접종(BCG)을 시키는 것이 좋다.
*젊은 여성에게 많은 기관지 결핵
기관지 결핵은 기도나 기관지에 결핵이 생기는 병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림대의대 한강성심병원 호흡기내과 현인규 교수는 "기관지결핵은 4대 1 많게는 8대 1정도로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많다"면서 "특히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전염병"이라고 말했다.
전체 결핵 환자의 85%가 폐결핵을 앓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약 10%는 기관지 결핵을 동반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다. 폐결핵 없이 기관지 결핵만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현교수는 "젊은 여성에게 기관지 결핵이 많은 이유는 미관을 의식해 가래를 잘 뱉지 않고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결핵균을 포함한 분비물이 기관지 내에서 장시간 머무르게 된다"고 말했다. 가래를 기관지에 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관지 점막이 결핵균과 접촉할 확률, 즉 결핵 발생 확률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 현교수는 "여성의 기관지 내부가 남성보다 좁은 것도 한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기관지 내강이 넓을수록 가래뱉기가 쉽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결핵균이 몸 안에 들어와도 저항력이 약화된 경우에만 감염된다는 점에서 젊은 여성들의 심한 다이어트열풍도 기관지결핵 발생에 일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기관지 결핵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오진이 잦다는 점이다. 많은 의사들, 심지어 호흡기전문의조차도 기관지 천식으로 잘못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기관지 결핵이 흉부X선 검사에서는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교수는 "폐결핵 진단에선 흉부 X선 사진이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기관지 결핵에선 흉부 X선 사진이 정상으로 보일 수 있어 세밀한 진찰을 통해 호흡음을 잘 들어보지 않으면 초기에 기관지염이나 기관지천식으로 잘못 진단해 치료시기를 늦추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관지결핵환자의 주요 증상인 숨을 쉴 때 쌕쌕거리는 소리가 기관지 천식환자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숨을 들이쉬거나 내쉴 때 쌕쌕하는 천명음이 기관지 천식환자일 경우엔 가슴 전체에서, 기관지 결핵일 경우엔 오른쪽 가슴에서만 들린다고 말한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정교수는 "기도나 기관지에 염증이 발생하는 기관지결핵환자의 가래엔 배출 결핵균이 폐결핵에 비해 훨씬 많을 수 있다"면서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결핵을 전염시킬 가능성도 더 많다"고 말했다.
또 치료가 늦어지면, 기관지결핵 환자는 결핵은 고칠 수 있지만, 기관지가 좁아져 숨을 잘 쉬지 못하는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기관지협착증이 심해지면 폐로 가는 주기관지가 거의 막히게 돼, 평생동안 심한 호흡곤란을 겪을 수 있으며, 막힌 기관지 아래 부위의 폐에는 폐렴이 자꾸 발생할 수 있다. 권교수는 "숨을 쉴 때 소리가 나고, 천식치료를 받아도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기관지결핵 여부를 체크하라"고 권했다.
yjsong@hk.co.kr
■환자의 물건 통해선 전염안돼
젊은 여자환자가 2개월 전부터 기침이 심하고 숨이 차고 목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난다며 찾아왔다. 흉부X선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정상이었고, 최근엔 기관지천식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이 별로 좋아지지 않아 종합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기관지내시경검사 등 여러 검사를 하려면 입원이 필요해 보호자를 불렀다. 보호자는 다음 달 결혼 예정인 약혼자였다.
검사결과 결핵균이 검출됐고, 보호자에게 전염 우려 때문에 당분간 환자를 격리병실로 옮길 것을 권했다. 환자와 약혼자의 표정이 곧 어두워졌지만, 열심히 약을 먹으면 완치되는 병이라며 안심시켰다. 환자의 상태는 곧 나아졌고, 나흘 만에 퇴원했다. 그리고 2주 후 환자가 어머니와 함께 다시 외래로 왔길래, 결혼준비는 잘 돼 가냐고 물었더니 환자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신랑쪽에서 파혼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결핵이 불치병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신랑될 사람이 완고한 가문의 장손으로 집안 어른들 뜻을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수소문끝에 환자의 약혼자를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환자를 사랑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약혼자 말에, 그 말이 진실이라면 평생 후회할 일 하지말고 다시 한번 부모님을 설득해보라고 했다. 줄담배만 피워대던 약혼자는 부모님 결정을 어길 수는 없다며 한숨지었다.
결핵환자를 진료하다보면 이처럼 결핵에 무지한 일반인들을 만날 때가 너무 많다. 결핵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파혼당하고, 취직도 안되고 학교나 직장생활에선 휴학이나 휴직을 권유받게 된다.
물론 보육시설이나 유치원, 초중고교의 교사, 요리사 같은 음식물 취급 직종 종사자가 결핵에 걸렸다면 취업에 제한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결핵환자의 식기 의복 침구 책 가구등과 같은 소유물이나 음식물을 통해선 전염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도 명심했으면 한다.
현인규 한강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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