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알면 大洋이 보인다동해는 작지만 큰 바다다. 태평양과 대서양 같은 대양(大洋)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동해를 연구하면 대양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일본, 러시아 등이 앞 다퉈 동해 연구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대양처럼 아주 깊은 바다 밑에는 오히려 염분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 동해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 보자.
*동해를 둘러싼 선진국들의 연구 경쟁
1991년 외국인의 출입이 금지된 구 소련 극동함대의 본거지인 해군도시 블라디보스토크 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와 구 소련 간의 국교가 없던 시절이었다. 거기서 깜짝 놀랄 문서를 보았다. 러시아 해양연구기관들이 내놓은 동해 관련 연구자료에는 우리나라의 영해 인근까지 까만 점이 촘촘히 찍혀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러시아는 동해를 손바닥 보듯 훤히 알 정도롤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해는 지리적으로 한국과 일본, 러시아를 끼고 있어 국가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지역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동해의 명칭,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놓고 이미 오래 전부터 상반된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그래서 동해를 둘러싼 주변 국가의 연구가 소리 없는 경쟁 속에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도 200억원 이상의 연구비와 첨단 장비를 투입, 동해 연구에 뛰어들었다.
동해 연구에 왜 이처럼 세계 각국이 열을 올리고 있을까. 그것은 동해가 갖는 '대양성' 때문이다. 태평양이나 대서양 등 대양이 갖는 고유한 성질을 작은 바다 동해가 모두 갖고 있다. 그래서 동해는 '작은 대양(mini-ocean)'이라고 불린다.
*해류의 이동경로, 변할 수 있어
대양은 천천히 순환한다. 표층에 있던 물이 가라앉아 해류를 타고 깊은 바다 속을 이동하다가 다른 곳에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과정을 되풀이해 열을 이동시키며 지구의 기후를 조절한다. 남극해나 노르웨이 앞바다 물은 염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다른 해역에 비해 비중(比重)이 크다.
이 물은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면 비중이 더 커져 바닷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그 후 대양 곳곳을 이동하다가 물 위로 다시 떠오르게 된다. 가라앉은 물은 이동하더라도 온도나 염도 등 본래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역과 깊이에 따라 바닷물의 온도와 염도가 다른 것은 다양한 성질을 가진 물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도 이 같은 대양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와 연해주 연안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매우 차가운 물이 가라앉아 동해 깊은 바다 속을 돌아다니다 때가 되면 솟아오른다. 이러한 해류의 이동경로는 정해진 것이 아니고, 때때로 변한다는 것이 최근 자료에 의해 밝혀졌다.
1981년 동한난류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도 심해의 찬물이 솟아오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동한난류는 해마다 북위 37도30분 되는 지점까지 동해안을 따라 북상해 동해 가운데로 빠져나가는 것이 1930년대 일본인 해양학자 우다의 발견 이후 정설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연구팀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최초로 밝혀냈다. 동해에 차가운 물 덩어리들이 나타나면서 1981년에는 아예 동한난류가 없어지는 놀라운 변동이 있었다.
*대양과 같은 심해염분 최소층 존재
동해의 대양적 특성은 첨단장비 덕분에 최근 더욱 자세하게 확인되고 있다. 1993년부터 한국과 일본, 러시아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크림즈(CREAMS·동아시아연해순환연구)'를 통해 동해 1800m 지점에 심해염분 최소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동해의 염분은 표층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800m 보다 깊게 내려가면 오히려 염분이 높아진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대양과 같은 구조다.
필자는 이 심해염분 최소층을 경계로 위의 물을 '동해중앙수(East Sea Central Water)', 밑의 물을 '동해심층수(East Sea Deep Water)'라고 이름 붙였다. 이 층이 언급될 때마다 동해(East Sea)란 이름이 학자들 입에 자연스레 오르내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심해의 수온이 최근 들어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표층부터 4,000m 해저까지 매 6㎝ 마다 염도와 수온을 측정할 수 있는 정밀 장비 덕분이다.
동해의 순환주기는 길어야 100년이다. 대양이 1,000∼2,000년 만에 한번 순환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동해는 또한 육지와 인접해 있다. 대양을 연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동해는 남북간 수온 차가 매우 크다. 남쪽은 아열대 지역의 수온을 보이는 반면 북쪽은 아한대 수온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찬물과 더운물이 섞이면서 발생하는 변화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다. 동해를 통해 대양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열쇠는 여기서 발견된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동해 연구에 속속 뛰어드는 이유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해양관련 국제회의가 열렸다. 여기서는 바다의 수온과 염도를 측정, 그 자료를 인공위성을 통해 전송하는 부이(bouy)를 전 세계 바다에 띄우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1,100개의 부이가 세계 곳곳의 바다에 뿌려졌다. 이것은 바다 속을 이동하다가 열흘에 한번씩 수면으로 나와 자료를 전송하고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 동해에도 30여 개의 부이가 투입돼 자료를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동해에 이처럼 많은 부이가 배정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각국이 동해의 중요성을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계속 부르려면 더 늦기 전에 연구력과 연구비를 동해에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우리의 바다를 알아야 할 시점이다.
/김구 BK21사업 서울대 지구환경과학 사업단장
▲미국 MIT 우즈홀 해양연구소 이학박사
▲서울대 대학원 지구환경과학부 학부장
▲크림즈(CREAMS) 한국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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